휩쓸리지 않을 단단함으로 절제하자
루마니아에 오래 살다 보니 한국에 계신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자주 못할 때가 많다. 가끔은 잊고 살기도 한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도 루마니아에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났다거나, 큰 이슈가 있어서 한국뉴스에 루마니아라는 이름이 언급이라도 되면,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은 혹시 우리에게는 별일 없는지 묻는 카톡을 보낸다. 물론 그런 큰 사건들이 우리 가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 적은 거의 없다.
그런 걱정 어린 메시지들을 받으면 너무 고맙고 마음이 애잔하다. 그렇게 한 번 더 통화할 수 있고, 안부를 물을 수 있어서 정겹다. 보고 싶은 가족들, 친구들이 루마니아의 이름 속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니까.
우리 부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비행기로 15시간은 가야 하는 미국에 있으니 비가 많이 와도 걱정, 산불이 나도 걱정, 허리케인이 와도 걱정, 유학생정책이 바뀌어도 걱정이다.
남편은 아이들이 있는 미국 뉴스, 가족들이 살고 있는 한국 뉴스를 매일 챙겨보고, 관련뉴스나 유튜브채널까지 확인한다. 그리고는 아이들이나 가족들과 통화를 할 때 걱정되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조심을 시킨다. 잔소리꾼이라 말해도 상관없다는 듯 늘 걱정을 드러낸다. 그럴 때면 아이들이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아빠! 유튜브 너무 많이 보지 마!"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얻은 정보를 가지고 필요이상으로 걱정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는 멀리 있는 거리만큼이나 걱정도 길게 늘어놓는다.
개미는 낙천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이런 아빠에게 이야기한다. "아빠, 나는 괜찮으니까. 유튜브 많이 보지 마.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먼저 이야기해 줄게."
개미의 말이 맞긴 하다. 우리는 정보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이 인터넷뉴스, 유튜브, SNS 등에 빠져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루마니아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은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마친 후에 루마니아어로 더빙된 디즈니만화영화를 자주 봤다.
TV시청시간을 정해주고 시간이 다 되면 스스로 텔레비전을 끄게 했다. 가끔은 좀 더 보고 싶다고 조를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바로 끄지 않고 추가로 30분을 주고 나서 끄도록 협상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추가로 받은 시간으로 마음을 채우고 스스로 텔레비전을 껐다. 생각해 보면 그때부터 개미와 밤톨이는 절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핸드폰을 사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개미가 11학년때부터는 폴더 폰을 사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학교 선배 중 한 명이 11학년때부터 폴더폰을 쓰면서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좋은 대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본인도 한번 그렇게 해 보겠다며 폴더폰을 사달라고 했다.
나는 당연히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며 11학년이 되면 폴더폰을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런데 10학년을 마칠 무렵 베를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그만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하고 말았다. 개미는 크게 속상해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엄마, 이번 기회가 정말 좋은 것 같아. 나 지금부터 폴더폰 쓸게."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폴더폰 사용이 대학교 입학 전까지 이어졌다. 개미는 폴더폰 사용이 전혀 불편한 것 같지 않았다.
개미는 자신의 폴더폰사용경험이 꽤 괜찮았는지 밤톨이에게도 폴더폰을 사용을 추천했다. 하지만 밤톨이는 생각보다 쉽게 스마트폰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밤톨이도 여름방학 때 아는 분들과 함께 낚시를 하러 갔다가 낚시터 연못에 그만 핸드폰을 빠뜨리고 만 것이다. 밤톨이 역시 차라리 잘 된 일이라며 폴더폰은 아니지만 집에 있던, 거의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아주 사양이 낮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런 일들 때문인지 아이들은 청소년시절 컴퓨터나 핸드폰에 사용에 대한 절제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개미는 비지니스 분석가로 일하고 있고, 밤톨이는 영화를 만든다. 지금은 아이들도 컴퓨터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으니 컴퓨터 사용시간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자라면서 인터넷이나 핸드폰 사용에 대한 절제가 되어서인지 그다지 집착을 하지 않는 듯하다. 회사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7-8년 된 오래된 컴퓨터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개미와 밤톨이 눈에도 어른인 엄마 아빠가 유튜브나 SNS를 통해 많은 소식을 접하면서 때론 부풀린 뉴스, 때론 추측하는 뉴스, 그리고 사실이 아닌 정보들로 인해 지나치게 자신들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아이들의 조언이 맞긴 하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우리는 컴퓨터나 핸드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더군나다 요즘은 거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이나 AI를 통해 얻을 수 있으니 전자기기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우리는 필요이상의 정보를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불필요한 몰입으로 내 생각이나 주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게 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그런 것들을 조절할 능력이 필요하다.
많은 정보 속에서 휩쓸리지 않을 단단함, 나만의 주관을 가져야 한다.
나는 얼마 전부터 유튜브 구독을 끊었다. 보고 싶으면 광고를 끼고도 볼 수 있지만 광고가 있으니 잘 보지 않게 된다. 최대한 인터넷을 적게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의 충고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사용을 조금은 더 절제하고, 글 쓰기에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유튜브를 자주 보지 않다 보니 그렇게 필요한 것도 아니었구나 싶었다. 필요한 정보는 책에서 얻을 수도 있고, 간단한 인터넷 검색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집착과 중독에 약하다. 절제할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많은 것들이 우리를 사로잡아 집착과 중독으로 몰아갈 것이다. 개미와 밤톨이 또한 예외가 될 수 없겠지. 하지만 지금의 그 절제력을 지키며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내려고 애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