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도 괜찮아
루마니아 사람들은 참으로 개방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리고 정이 많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고민을 이야기하면 마치 그 문제를 자기 것인 양 해결해 주려고 한다. 나는 그들을 오지랖이 넓은 민족이라 부른다. 그냥 내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자기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준다. 그래서 가끔은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루마니아사람들은 참 긍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 보면 질문을 할 때마다 손을 번쩍번쩍 든다. 답을 알아서 손을 드는 줄 알았는데 시켜보면 잘하지 못한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려고 한다.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아 누구를 시켜야 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루마니아 사람들과 달리 밤톨이의 성격은 참으로 소극적이었다.
밤톨이는 극도로 내성적인 아이였기에 처음에는 학교생활이 쉽지 않았다. 평소에도 쑥스러워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학교에서 발표회라도 하게 되면
앞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친구 뒤에 숨어서 개미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쑥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 모습이 늘 안타까웠다.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밤톨이는 수업시간에 손을 들지 않는 아이였다. 답을 알고 있어도 선뜻 손 드는 것을 두려워했고, 선생님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학기말 상담시간에 선생님은 밤톨이의 소극적인 행동들을 걱정하셨다.
엄마인 나도 그런 성격이라서 밤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러서 “너 너무 선생님 눈치 보지 말아라.”라고 충고할 정도였으니, 나를 닮은 밤톨이에게 억지로 손을 들고 대답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밤톨이 선생님께 부탁했다. " 밤톨이가 손을 들지 않으면 지명해서 시켜주시고, 혹시 대답을 잘 못하더라도 칭찬을 좀 과하게 해 주세요."
나는 보통의 엄마라도 되기 위해 나름 육아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고, 어머니학교도 여러 번 다녀왔다. 뭐라도 해서 밤톨이가 조금만 더 적극적인 아이가 되길 바랐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늘 고민이었다.
그래서 학기 초 아직 아이를 파악하지 못한 선생님께 밤톨이의 성격을 이야기하고 부탁을 드렸다. 칭찬만큼 아이들 적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밤톨이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 가기를 좋아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는 것 같았다. 몇 달 후 선생님은 아이를 픽업하러 간 나에게 다가와서는 밤톨이가 요즘 손을 번쩍번쩍 들고 대답도 잘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칭찬의 힘이 컸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호박씨 스타일이다. 물론 나쁜 의미의 호박씨는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하는 숙맥이지만, 뒤에서는 친구들을 잘 도와주는 오지랍 친구였다. 나는 유독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매우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밀어주고 도와주고 받쳐주는 역할을 잘한다. 호박씨를 까서 앞에서 고생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오지랖 넓은 호박씨라고 말할 수 있다.
밤톨이도 그런 아이였나 보다. 엄마처럼 그렇게 성장해 가고 있었다. 호박씨를 까다보니 결국 친구들의 추천으로 학생회장선거에 나간다던지, 대학교 다니면서는 친구들을 돕다가 첫 영화동아리를 만들었고, 외로운 한국유학생 동아리를 만들어 유학생들의 향수를 달래는 일을 해 왔다.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이런 밤톨이를 볼 때마다 정말 신기하다.
밤톨이는 겉으로는 소극적이고 드러나지 않는 아이지만, 호박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아이였다. 어쩌면 나중에는 환한 빛이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앞에서 빛이 나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돕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삶이겠지.
오늘도 용기가 없어 한 발짝 물러났던 내 발걸음을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뎌 본다. 호박씨가 되든 빛이 되든 중요한 건 내 안에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용기가 자라고 있다는 거니까.
밤톨이도 그렇게 성장하길 바란다. 빛나기보다 누군가를 격려하는 용기를 가진 아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