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엉덩이가 가벼우셨지

6강 과제 간결하게 쓰기 -정윤작가님 소설기초반

by 하빛선

엄마는 엉덩이가 가벼우셨다. 가만히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계실 줄을 모르셨다. 늘 종종걸음으로 여기저기를 다니셨다. 집안에서도 뭘 하시는지 늘 바쁘셨다. 엄마는 내가 본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했다.


엄마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벌써 그 일 앞에 서 계셨다.

친정에 가서 떡볶이 먹고 싶다고 농담처럼 한마디 던지고 누워 있으면, 어느덧 떡볶이 한 접시를 사가지고 싱긋 웃으시며 나에게 내미셨다. 언제 떡볶이 가게까지 다녀오셨는지 정말 빠르시다. 엄마는 항상 그런 사람이었다. 김치찜이 먹고 싶다고 한마디 하면 어김없이 그날 반찬은 김치찜이다. 엄마는 늘 그랬다


결혼을 해서 친정집과 같은 동네에 집을 얻었다. 셋째 딸을 멀리 시집보내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꼼수였다. 결혼 전부터 미리 봐 두셨던 아파트를 냉큼 추천하는 바람에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건도 그다지 나쁘지 않고, 친정도 가까워서 나는 기꺼이 계약을 하였다.

엄마는 언제나 내가 필요한 것이 있는지 미리 살펴서 챙겨주셨다. 그러고도 매주 반찬과 김치를 장바구니 카트에 가득 담아서 작은 체구로 낑낑거리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끌고 오셨다. 그리고는 우리 집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시고 가셨다. 그것도 모자라 틈만 나면 친정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토요일 아침부터 전화를 하셨다. 그때는 그게 어찌나 귀찮던지. 괜히 친정집 옆에 집을 얻어서 늦잠도 제대로 못 잔다며, 엄마한테 제발 토요일 아침에 전화하지 말라고 투덜거렸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해부터 엄마의 엉덩이가 무거워졌다. 점점 어깨관절염으로 팔 움직이는 걸 힘들어하시더니 종종거리던 걸음도 속도가 줄었다. 같이 횡단보도라도 건너게 되면 애가 타도록 더뎠다. 아버지의 부재가 엄마를 가라앉게 만든 걸까. 그후 엄마의 엉덩이는 더 이상 가볍지 못했다. 해마다 엄마의 엉덩이는 점점 더 무게를 더해갔다.

그러잖아도 작은 몸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쪼그라들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만나야만 했다.


이제는 내가 엄마 음식을 챙긴다. 어린아이처럼 음식을 잘 씹을 수 있게 잘게 잘라준다. 함께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손을 붙들고 천천히 보조를 맞추어 걷는다. 차를 탈 때도 계단을 내려갈 때도 부축을 한다. 아이가 되어가는 엄마를 보는 마음이 아린다. 가끔씩 이렇게 만나는 엄마가 왠지 내 엄마 같지가 않다.

어린아이가 되고 싶어 찾던 친정이 이제는 없다. 떡볶이 한 접시 종종거리며 사 오시던 엄마는 이제는 없다. 김치 담아 냉장고에 채워주시던 엄마는 딸이 담아주는 김치조차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가 늙어가고 나도 늙어간다.

가끔 우리는 무거워진 엉덩이를 붙이고 옛날이야기를 나눈다.


멀리 있다는 건 좋은 시간도 자주 가지지 못하지만, 힘든 시간조차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요양원에 들어가신 엄마가 폐에 큰 문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폐를 쿡쿡 찌르는 듯 속이 아프다. 이제 내년이면 90이신데, 앞으로 남은 날이 많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는 20년 전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던 엄마가 머물러 있다.

오늘따라 그 옛날 종종거리며 다니시던 엄마의 발걸음이 사무치게 그립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괜찮을거라고 고개를 끄덕이시던 엄마가 너무 간절하다. 이제 몸은 가벼워졌고 발걸음은 무거워진 엄마를 보며 내 심장도 더불어 쿵 내려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