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로는 시의 집이 만들어질 수 없는 일이 빵에도 있어서 144장의 모든 담벼락에 시가 적힐 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지독히도 지난한 일을 괴로워하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같은 시간과 공을 들여도 결과가 같을 수는 없는 일을, 그럼에도 견딜 수 없는 갈망으로 주방에서 책상에서 하는 사람들. 그들은 긴 어둠으로 빚은 이 시간을 완전히 부숴줄 타인을 기다린다.
-신영인 산문집『페이스트리』 중에서
시작은 시였다.
가슴속에서 울분이 솟아오를 때마다 그 화와 한을 받아 적는 일이 시의 시작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걸 시라고 부르는것은 시에게 미안한 일로, 그냥 시의 형태를 띤 언어 텍스트들의 집합이었다.
슬픔과 분노는 같은 결이어서 안으로 흐르는 분노는 슬픔이 되고, 밖으로 비어져나가는 슬픔은 분노가 된다. 서투른 솜씨로 펜을 잡아서는 개인적 회한이 담긴 텍스트를 빛내기 어렵다.
눈물도 결국엔 세균이 들끓는 액체 그 이상이 될 수 없듯, 제멋대로 솟아 나온 단어들은 본래 썩어야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나의 염치가 시에게 실례하는 일을 멈춰주었다.
글자들에 예의를 차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았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텍스트들의 규칙을 배웠다. 인간의 예의범절을 배우려면 교양 있는 인간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듯, 교양 있는 글에게 나의 시간을 숙였다. 문자의 질서는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순했다. 미끄러지듯 나아갈 때도 있었고 가끔 높은 계단을 지날 때도 있었다. 종이 위에 좌측과 우측으로 나란히 정렬된 글의 길을 순례하며 문을 열듯 페이지를 넘겼다.
1년 2개월, 순례길에 드디어 벽을 만났다. 여태 험하거나 고운 길, 높거나 낮은 계단과 언덕, 잘 열리지 않는 뻑뻑한 문과 자동문을 골고루 만났어도 벽을 본 건 처음이었다. 조심스럽게 안부를 물었으나 벽의 어디에 인사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계세요?... ..." 초보 순례자의 공허한 인사가 벽을 훑어도 벽은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순례자에게 무섭냐고 물었더니 그는 작은 미소를 띄우고 말했다.
"저는 행운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