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맛 풍경으로 전하는 사랑

정윤 작가님의 소설 쓰기 기초방 4강 감각적으로 글쓰기 숙제

by 이열하



소리 맛 풍경으로 전하는 사랑


사랑이란 소리 맛 풍경으로 전해질 때 더 짙게 다가온다.


"사각사각" "톡톡" "탁탁" 나를 위해 차려지는 밥상 만들어지는 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져 내 마음에 감동의 물결로 전해왔다. 내가 고3 수능 시험 보던 날의 일이었다.

그날 새벽의 온기와 하룻밤의 따뜻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교회 주일학교부터 사모님은 온기 가득한 시선으로 날 대해 주셨고 "기특하다. 기특해!" 라고 말하며 칭찬을 넘어선 위로와 격려를 해주었다. 학생부 회장으로, 주일학교 봉사자로 열심히 했던 나의 허기진 배도 감싸 안아 주셨다. 그 시절은 아마도 사모님의 사랑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식당 일을 하시는 엄마는 별이 뜬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셨고, 아빠는 당뇨에 합병증으로 병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기 때문이다. 중학교 무렵, 아빠의 건강은 결국 일상생활마저 버거울 정도로 악화되었지만 몸을 챙기기커녕 늘 술과 함께 셨다. 아빠의 벗은 소주였고 소주병은 집 한구석에 가득 쌓여갔다.

이런 우리 집 사정을 너무도 잘 아시는 사모님은 수능 전날 사택에서 자라고 하셨다. 우리 집에서 대학진학은 '굳게 닫힌 문'과도 같았는데 그 소망을 묵묵히 가슴에 품고 굳건히 버틸 수 있도록 지지해 주신 그 크신 사모님 사랑을 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수능 전날과 당일, 목사님 댁은 우리 집의 공기와는 너무도 달랐다.

우리 집 식탁에서는 따뜻한 눈 맞춤도 안락한 잠자리와 조명도 우아하고 고상한 말도 없었다.

하나라도 더 맛있는 반찬을 쟁취하기 위한 4남매들의 치열함과 눈치만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모님 댁은 달랐다.

수능 전 날 사택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정돈되고 아득한 집에서 사모님이 건넨 잠옷을 입고 신데렐라가 되는 순간이었다. 예쁜 세트 이불이 놓여 있는 침대와 침대 옆의 책상은 나만을 위한 마차인 것 같았다. 평소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음식과 과일 디저트는 나를 위해 차려졌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녘에 들리던 "칙칙~치이익" 밥이 되어가는 소리와 "솔솔" 고기를 볶는 냄새 "지글지글" 음식 만드는 소리는 내 귀와 코를 깨우는 생애 최고의 아름다운 소리 알람이었다.

그리고 사랑 머금은 도시락과 편지까지 그날은 하루 종일 내 마음에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고3수험생을 둔 학부모가 되었다.

사랑은 받은 사람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때 그 따뜻함이 내 삶에 한줄기 빛이 되었기에 딸에게도 소리, 맛, 풍경으로 전하는 엄마의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날벼락인 일이 생겼다.

수능 2 주일 전에 둘째 아들이 기침을 해대고 이마에 뜨끈뜨끈 열이 나더니 A형 독감이란다. 5일쯤 지나 셋째 이마에도 열이 펄펄 난다. 역시 독감이다. 그리고 식구들의 먹거리를 책임져야 하는 나는 피해 가길 바랐는데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 내게도 왔다. 큰아이도 콜록콜록! 병든 닭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다행히 가볍게 비켜 갔지만 수능 이틀 앞두고 집이 아닌 할머니네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일생에 단 한번 고3 수능은 최고로 극진하게 보듬어 주고 싶었다. 워킹맘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서, 유치원 운동회, 학부모 참여수업 등 그 소중한 순간마다 할머니의 따스한 그림자가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 주었기에 이번만큼은 그 공간에 엄마의 사랑이 채워지길 바랐었다. 수능 앞두고 딸과 2일간 생이별을 하며 아이의 기억 속에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만 남기어야 하는 내 마음은 뭔가 소중한 것을 또 빼앗긴 기분이었다.


"그래도 도시락은 엄마가 싸줘" 딸아이의 말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맛있는 사랑을 준비하기로 했다.

혹시 감기바이러스가 침입할 새라 입에는 마스크를 두르고 손에는 알코올소독제로 꼼꼼하게 문질문질 한 후, 새벽 5시 알람소리와 함께 달그락 거리며 도시락을 준비했다. 텅 빈 허기를 채울 따스한 속삭임이 딸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른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 긴장감이 감도는 수능 시험장까지 엄마의 사랑을 무사히 전달할 수 있었다.

수능시험날 새벽녘, 엄마의 사랑을 전하는 리듬 타는 칼질소리, 착착착 향긋한 재료들이 팬 위에서 춤추며 내는 사르르 소리, 연기 따라 흐르는 사랑의 열기로 가득 찬 주방의 작은 음악회는 관객 없는 독주로 끝났지만도시락을 통해 완성된 협주곡은 딸아이의 귀와, 마음에 흘러 오래 남았길 간절히 바란다. 사모님께서 내게 주신 도시락은 사랑이었고 난 그 사랑을 다시 딸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것처럼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는 행위는 다시 받는 행위로 이어진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주는 행위는 다시 받는 행위로 이어진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에서




딸아! 고생 많았어.

인생의 첫출발이지만 살다 보니 디딤돌이 많더라.

그러니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다 해도 좌절하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퇴사하겠습니다. 시를 쓰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