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주 차~먼지의 단상
나만의 비유적 에세이 쓰기
햇빛이 방 안으로 비스듬히 비출 때면, 공기 속에서 춤을 추는 먼지들이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평소에는 존재조차 드러내지 않던 그들이 빛 한 줄기를 만나면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존재들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흔드는 것 같다.
내게 먼지는 하루의 틈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세계다. 잠시 멈춰 바라보면, 그 사소한 것들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붙잡는다. 사는 동안 흩어버렸던 이야기들이 먼지 한 톨에 달라붙어 다시 떠오르는 듯하다. 사실 먼지는 꽤 성실하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도 하루하루 자신의 모습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가만히 눈을 좁히면, 먼지는 빛의 강을 따라 천천히 떠오르다 사라진다. 마치 오래된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가 다시 마음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처럼.
먼지는 늘 조용하고 가벼워서 가까이 가면 손끝에서 흩어져 버리고, 멀리서 보면 은근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붙잡으려 들면 멀어지고, 잠시 가만히 두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곁에 머문다.
청소기를 꺼내 들 때마다 나는 마음이 개운해진다. 먼지를 모으는 일이 꼭 마음을 쓸어 담는 일 같아서다. 하루 동안 쌓인 말, 지워지지 않은 표정, 괜히 마음에 남은 잔상 같은 것들을 한 곳에 모아 털어내는 듯하다. 청소는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 내 안의 어지러움을 정리해 주는 작은 의식이다. 손목을 밀고 당길 때마다 쓸려 나가는 것은 실제 먼지뿐만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부스러기들이다.
창밖에서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엘리베이터 문 닫히는 소리가 하루를 정리하듯 울린다. 소리를 배경 삼아, 방 안의 먼지들은 여전히 제 갈 길을 떠다닌다.
먼지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시간이라는 강을 건너며 벽 틈에 숨어 있던 오래된 먼지들은 세월의 냄새를 품고 있다. 가끔은 그것들이 오래된 앨범 속 사진처럼 느껴진다. 꺼내면 바스러질까 조심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다시 보고 싶은 풍경이 묻어 있다. “그땐 그랬지” 하고 속삭이는 듯하다.
먼지는 시간의 손길이 남긴 흔적이며, 우리도 결국 그런 흔적들로 이루어진 존재다. 책상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바라보다 보면, 어떤 날은 그것이 작은 생명처럼 느껴진다.
바람결을 따라 부드럽게 이동하며 방 안을 탐험하는 작은 여행자 같다. 문틈을 지나고 옷깃에 잠시 머물렀다가, 햇빛이 드는 창가에 멈춰 서는 모습은 길을 잃은 사람의 발걸음 같기도 하다. 방향 없이 떠도는 듯해 보여도, 결국 멈춰야 할 자리에서 고요히 가라앉는다.
우리도 하루를 살아내며 그와 비슷한 여정을 반복한다. 잠시 떠돌고, 흔들리고, 결국엔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먼지를 품고 산다. 말하지 못한 후회, 잊힌 다짐, 지나온 계절들의 숨결 같은 것들. 하지만 먼지가 있다고 해서 삶이 지저분해지는 건 아니다. 때로는 그 먼지가 삶의 결을 더 깊게 만든다. 마음속에 쌓여 있는 작은 슬픔이나 오래된 응어리도 먼지처럼 조용히 자리를 잡고 우리를 변화시킨다.
쓸어낸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면 먼지들은 바람을 타고 사라진다. 떠나는 모습은 늘 가볍고 담담하다. 붙잡아 둘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먼지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묘한 통풍 같은 마음의 여백이 생긴다. 비워져야만 새롭게 채워지는 공간. 어쩌면 우리는 먼지를 치우는 게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들이는 준비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먼지는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빛이 스칠 때만 반짝일 뿐이다.
우리도 그렇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따뜻한 시선 하나가 내가 잊고 있던 존재의 결을 순간적으로 밝혀 준다. 우리는 혼자 빛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빛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먼지가 춤추는 방 안을 바라본다. 그 작은 존재들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살아가는 일은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흩어질 만큼 가볍고, 다시 쌓일 만큼 부드러우면 충분해요." 먼지는 늘 그렇게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리고 그 말을 믿고 싶어진다.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쌓이고, 햇빛이 비치면 반짝이며 떠오르는 먼지처럼, 나도 그렇게 하루를 견디고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