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더 긴 하루를 위해

일찍 깨는 노인

by 하빛선

정윤작가님의 소설기초반 7강숙제로 작성했고, 작가님의 피드백을 받아 다시 퇴고하였습니다.


'노인은 잠이 없어서 늘 소년을 깨워준다. 그날도 소년은 자명종 같은 노인에게 아침에 깨워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이들은 잠이 많으니까. 노인들이 왜 일찍 깨는 걸까 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한다.'


"남들보다 더 긴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헤밍웨이의 책들은 내가 대학교 때 좋아했던 책들이다. 벌써 35년 전 일이다. 그때 왜 헤밍웨이의 책에 마음이 꽂혔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 책들이 좋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요즘 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영화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내용들이 지금은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다. 철없고 무모했던 대학시절을 돌아보며 그때는 알지 못했던 삶의 깊이가, 지나 온 세월앞에서 어떻게 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경험도 쌓이고 생각의 폭도 조금은 넓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나는 자주 넘어진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어느 부분에서 넘어지고, 어떤 상황에서 미끄러지는지 금방 들통이 나 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줄을 그어가며 읽는 문장이나 단어의 수가 점점 늘어간다. 그 문장들이 마음속으로 달려 들어와 내게 제대로 살고 있냐고 묻는 것 같다. 그 문장들이 가슴을 아득하게도 하고 후회하게도 하고 앞으로 살아갈 삶을 안내하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에 쓰인 삶의 이야기들이 지금까지도 감동을 주는 걸 보면, 우리의 삶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작품들을 누가 명작이 아니라고 하겠는가.


데미안을 다시 읽었을 때도, 천로역정을 읽었을 때도,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때도,

모든 책을 다 나열하기는 어렵지만, 그 책들이 왜 명작이어야 하는지 수긍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마지막 장까지 마치 우리의 삶을 누가 훔쳐보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러움에 숨죽이며 읽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나에게로 와서 '너도 그런 인간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다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때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다시 기억해 내리라는 다짐를 하며 한문장 한문장을 뜷어지게 쳐다본다. 그런데 초반부터 별 것 아닌 구절에 눈이 꽂히고 말았다.

노인은 잠이 많은 소년을 매일 아침 깨워주며 자명종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나는 왜 이렇게 잠이 없을까? 남들보다 더 긴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닐 것 같은 이 구절이 확 와닿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나이 들어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 나이는 해마다 세월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일주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시간을 삼킨다.

나이가 들면서 남들보다 더 일찍 눈이 떠지는 이유가, 더 긴 하루를 살기 위해서라니...


문득 '갱년기 여성이 잠을 잘 못 자는 이유도 더 긴 하루를 살기 위해서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많았던 내가 갱년기가 되면서 새벽에 자주 깬다. 2시, 4시, 6시... 한 잠 잤다고 생각하고 눈을 뜨면 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최소 6시간은 자야겠다는 일념하에 눈을 감아 보지만 이미 떠나가 버린 잠은 붙잡을 수가 없다.


갱년기는 노인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길 모퉁이를 돌았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그 모퉁이를 돌지 않으려고 잠을 붙들어 보지만 잠은 이미 저만치 내 앞에서 길을 서두른다.

힘겹게 시간을 붙잡아 하루가 길어져도 나에게는 하루가 너무 짧다. 아침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밤이 좀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시간은 너무 빨리 내곁을 떠난다.


나는 노인이고 싶진 않지만 더 일찍 깨는 사람이고 싶다. 도망가는 시간들을 다시 붙잡아 남들보다 더 긴 하루를 살고 싶다. 남아 있는 내 삶을 좀 더 잘 살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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