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깽깽했다

나의 깽깽이 연주

by 하빛선

나는 요즘 해금을 연주한다. 나는 해금연주자는 아니다. 그냥 해금을 혼자 배우는 독학생이다. 해금이라는 악기는 다른 악기와는 달리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운다고 잘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물론 어떤 악기든 하루아침에 되는 건 없다. 그러나 해금은 어느 줄을 얼마만큼의 힘으로 어느 정도 지그시 눌러주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정확한 음을 내려면 감각을 기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재작년에 운 좋게 해금을 전공한 선생님을 만나 삼 개월 배운 것이 전부인지라 뭘 배운 것 같기는 한데 여전히 도레미 배우는 초급 수준처럼 소리가 깽깽거린다. 줄도 팽팽하게 잡아야 하고 활도 정확하게 줄을 지나가야 하는데 줄에 신경쓰다 보면 활이 휘어지고 활을 신경쓰다 보면 줄 잡는 것이 허술해진다. 정확한 위치를 눌러줘야 하는데 자꾸 엉뚱한 곳이 눌린다. 그래도 연습하면 조금씩 나아지겠지 하는 바람으로 시간이 나는 날에는 해금을 집어 들고 연주자 흉내를 낸다. 그런데 이놈의 해금은 연습을 조금만 해도 줄을 잡은 손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어깨, 허리, 팔이 아프기 시작한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배길 때까지 연습해야지 하면서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늘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나름 무엇이든 잘 배우는 편이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빨리 배우고 빨리 터득하는 편이다. 피아노도 두달만에 바이엘을 뗐는데 이까짓것 해금정도야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해금 녀석은 몇번 연습한다고 해서 예쁜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내가 문제가 아니라 악기가 문제일거야. 비싼악기가 아니라서 소리가 잘 안 난다고 괜히 악기 핑계를 대본다. 그러면서 다시 처음부터 소리를 내 본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어딘가는 소리가 낮아져 있고 어딘가는 소리가 높아져 있다. 줄을 잡고 누르는 손도 점점 마비되는 것 같다. 어휴, 힘들다.


남편은 내가 해금을 연습하고 있으면 문을 빼꼼히 열고 나에게 한마디 던진다.

"도대체 무슨 곡을 연주하는 거야? 깽깽 소리밖에 안 나는데. ㅎㅎ"

"지금 아리랑 연주하고 있잖아."

"글쎄~ 그렇게 들리지 않는데...ㅋㅋ"


내 귀에는 분명히 아리랑인데 남편 귀에는 깽깽 소리일 뿐이었나 보다. 적잖이 실망한 나는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 이제는 홀로아리랑, 상사화, 여우비까지 연주한다. 나 나름대로 실력이 늘었다고 자부하지만, 깽깽소리는 여전하고 아직까지 정확한 소리를 다 내지는 못한다. 잘 나가다가도 한번씩 삑사리가 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깽깽소리도 내 귀에만은 아름다운 선율로 들리고 혼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가끔 내가 하는 말이 깽깽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 분명 논리적으로 맞는 말들을 정확히 잘 말하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왠지 분위기가 썰렁해지기도 하고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시선을 느낄 때도 있다. 내 귀에는 아름답고 정확한 아리랑 선율로 들리는데 다른 사람의 귀에는 뭔가 불필요한 소리들이 많이 들어가 깽깽거리는 소리같이 들리는 것일까. 내가 듣는 내 연주와 남이 들어주는 연주는 이렇게 다르다. 연주하는 사람보다 연주를 듣는 사람이 더 감동받으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면 그 연주는 성공한 것이다.

가끔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 그리 장황하지 않아도 그 말이 별처럼 나에게 콕 박힐 때가 있다. 나는 아직 그럴 정도의 성숙된 사람은 아닌걸까. 그럼에도 내가 맞다고 내 연주를 들어달라고 우기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연주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의 곤란함을 생각지도 못한 채.


오늘도 해금을 연주한다. 한음한음 정확하게 연주하려고 조율앱을 꺼내놓고 손가락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줄을 잡아 본다. 아리랑뿐만 아니라 다른 곡들도 아름답게 연주해서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전할 수 있을 그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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