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의 반항

반항하는 마음

by 하빛선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 중 하나가 남편이 일이 없을 때는 늘 집에 있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남편은 갈 곳이 별로 없다. 만날 사람도 많지 않다. 또한 삼시 세끼 집에서 밥을 먹고 싶어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삼식이라니~ 타국에서 시켜 먹는 음식이 뭐 거의 햄버거나 피자 아니면 치킨인데. 코로나 지나면서 메뉴가 좀 다양해지긴 했어도 그것들도 별로 당기지 않는단다. 한국사람은 밥을 먹어야 속이 편하다나 뭐라나. 특히 이 나라 명절이나 연휴기간이라도 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한국처럼 가족들을 만나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며칠씩 둘이 계속 집에 콕 박혀 있게 된다. 그래서 어쩔 땐 남편을 보면 자꾸 화가 난다. 걸어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냥 넘어가지지 않고, 별거 아닌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왜 이럴까?


그러다가 누군가 나에게 "갱년기인가 봐요~"라고 말한다. 문득 정말 내가 갱년기가 온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는 '아~, 우리 아이들 사춘기 때 반응하고 정말 비슷하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찌 보면 사춘기나 갱년기나 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몸의 변화로 생기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아닌가.


요즘 나의 증상이 딱 그렇다. 남편이 말을 걸어오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슴 한편에서 이미 반항하는 마음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서둘러 남편이 하는 말에 반박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변명을 하려 든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듣지도 않은 채 미리 단정해 버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부터 먼저 해 버린다. 남편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줄 인내심이 없는 것이다. 반항하는 마음이 내 귀를 닫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들만 쏟아내게 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가끔씩 나타나는 이런 내 반응에 나 자신조차 놀라서 이런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정말 갱년기가 되면 이렇게 되는 걸까? 평소에는 싸우더라도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친해지고, 농담처럼 나의 건망증이 부부싸움을 물 베기로 만든다며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게 아닌가.


그런데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 쓰여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진실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 보이게 된다고 하였다. 한 가지는 화내고 방어하며 정작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다른 하나는 지적받은 것들을 겸손히 받아들여 아픔이 있을지라도 자신을 한 차원 높게 성숙시킨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당연하지. 나는 후자이니까 문제없는 성숙한 사람이지'라고 자신만만했었다. 그러나 남편과 대화를 할 때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던 어떤 반항심 때문에 대화를 잘 이어가지 못하고 거부반응을 보이는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끝까지 들어주고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한 단계 더 성숙할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결국 감정을 드러내며 갱년기라는 핑계를 대며 나를 좀 알아달라고 투정을 부렸던 건 아닐까.

아이들이 중학교 때 엄마말에게 반항하거나 버릇없게 굴면 ‘애가 지금 사춘기예요’라고 핑계를 대주며 창피함을 모면했었는데, 사실 그것은 옳지 않은 두둔이요 핑계였다. 지금 나도 ‘내가 갱년기라 그래요’라고 핑계를 대며 나의 모습을 정당화시키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마음속에 반항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느 누구와도 평화로울 수 없다.


나와 잘 지내지 못했던 사람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마음속에는 그들에 대한 반항심이 있었던 것도 같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다 끝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결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성숙하지 못했던 내 인내심과 이해심 때문이었다. 이제는 내 마음속에 있는 반항하는 마음을 다 지우고 수용하는 마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갱년기 핑계는 더 이상 하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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