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식이 다른 사람들

오늘 일을 오늘 꼭 해야 할까?

by 하빛선

오늘은 오랜만에 쉬는 날이다. 그럼에도 집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내일로 미루고 싶은 생각에 나름대로 핑계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이제는 한국사람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현지인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한국말보다는 현지어를 더 많이 하며 산다. 이곳으로 이주한 초기에는 인터넷도 발달되지 않았었고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대라서 한국과 연락을 하거나 한국드라마나 한국뉴스를 보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국드라마시리즈를 CD에 구워와서 한국사람들끼리 돌려보는 것이 유행이었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한국어로 소통할 수도 있고 한국드라마나 한국뉴스도 실시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리고 SNS를 통해 나의 소식도 알리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서로의 근황을 공유할 수도 있다. 나는 가끔 아니 자주 SNS를 사용한다.


SNS를 통해 한국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놀랍고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한국사람들은 정말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가끔 한국에 방문하여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들 그렇게 열심히 사는지.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하고 있거나, 건강이나 자기계발을 위해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거나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어렵게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을 뺏고 있는 것 같아 차 한잔 하는 것조차 미안할 지경이다.


내가 사는 이곳 사람들은 늘 여유가 있다. 서두르는 일이 별로 없다. 오늘 안 되면 내일 하면 되지 이런 마음이다. 오후 4시면 퇴근하는 사람들이 많아 저녁시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여유있게 즐기거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휴가도 한 달씩 길게 간다. 어떤 사람은 휴가를 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가 돌아와서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 학교는 오전오후반으로 나뉘어 있어서 오전반인 학생들은 1시가 되면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삼삼오오 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면서 수다를 떤다. 물론 일부 열성 부모를 둔 학생들은 과외하느라 바쁘긴 하지만... 대학생들은 학교에 출석하기보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을 쌓는다. 교수들은 출석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학교생활보다 사회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모든 일에 애매하다. 시간약속도 몇 번을 확인해야 만날 수 있고 확인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그냥 아니면 말지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넘어간다. 약속을 해도 쉽게 취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모든 일에는 변수가 존재하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사람들은 불평을 잘 하지 않는다. 나름 행복지수가 높은 편이다.


한국사람인 내가 보기에는 불편한 것들이 너무 많다. 처음에 이곳 사람들과 사귈 때에는 정말 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힘들었다. 그 힘듦은 결국 내 몫이었고 이 나라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그냥 보통의 일상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20년가까이 이곳에 살면서 나도 이제는 점점 이 사람들을 닮아간다. 일하면서 확실하지 않으니 해 봐야 알고, 가 봐야 안다는 식이 되었고, 그렇게 하다가도 안 되는 일에는 '아니면 그만이지'라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내 상식을 벗어나는 일에도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곳에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래야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휴가 때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한국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이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지금 나의 스타일이 게으르고 안일하고 무능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문화충격이 이런 건가 싶다.

하지만 이 나라사람들의 방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환경과 문화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겠지. 나는 내 나라 방식도 좋고, 이 나라 방식도 좋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을 찾으려고 한다. 내가 행복한 방식을.


그래서 오늘 나는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갑자기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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