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주

기억이 다른 사람들

by 하빛선

가끔은 바쁜 일정으로 인해 시장 보는 것조차도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너무 짬이 안 나면 남편에게 대신 장을 봐 달라고 부탁한다. 남편이 마트로 장을 보러 갈 때는 사야 할 품목들을 일일이 적어준다. 감자 10개, 두부 한 모, 돼지고기 1 킬로, 요구르트 6개 번들 등등.


그런데 남편은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요구르트가 많은 데 어떤 회사 제품을 사야 하는지, 두부는 또 뭘 사야 하는지, 감자는 크기가 작은데 10개만 사도 되는지, 돼지고기는 어느 부위를 사야 하는지 기타 등등 구체적으로 알려주길 원한다.

나는 그때마다 한숨을 짓는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살면서 마트에 갈 때는 늘 함께였고 나는 늘 같은 브랜드에 같은 제품들을 반복적으로 구입하기에 당연히 남편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혼자 마트에만 가면 멘붕이 오는 듯하다. 평소에 기억력이 남다르게 좋아서 한번 스친 사람도 신기하게 잘 기억하는 남편이기에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트에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매일 냉장고를 열고 닫으며 내가 사 온 것들을 보아왔지 않았을까 하는 내 기대도 헛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다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차라리 내가 갈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반대로 나는 사람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실수를 한다.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하고 예전에 한두 번 만났던 사람들은 다시 만나도 잘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다 실수할 때가 간혹 있어서 누가 반갑게 인사라도 하면 나도 아는 사람인 척 웃으며 안부를 물을 때가 있다. 근데 돌아서서 누구였더라 한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실수하지 않게 하려고 지인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그분들에 대해 시시콜콜 내게 알려준다.


기억이라는 게 그렇다. 집중해서 생각했거나 인상 깊었던 것들은 너무나도 잘 기억하지만 그냥 스쳤거나 집중하지 않은 기억들은 쉽게 저장하지 못한다.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내가 한 말들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자꾸 물어보면 괜히 핀잔을 주기도 했고, 남편이 무언가를 다시 물어보면 짜증을 내곤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 사람들의 잘못만은 아닌 듯싶다. 그 사람에게는 내가 한 말들에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거나 급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그 사람들이 하는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니까.


남편도 마트에 가면 내가 사는 물건들에 집중하지 않고 본인이 사고 싶은 것에만 집중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두 번 말해주는 걸 짜증 내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도 나와 같으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세 번째 물어보면 어떡하지? ㅎㅎ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