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은율. 최근 가족 여행을 간 여행지에서 이동하는 택시 안,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 전 시간, 관광지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 등 틈틈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핸드폰 메모장에 글을 쓰는 은율이의 모습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나갈 무렵 은율이는 그녀의 첫 장편 창작 소설인 ‘재앙의 시작’이란 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전체적인 스토리나 사용한 단어 그리고 표현력은 초등학생 치고는 잘 썼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떤 문장은 두세 번은 읽어야 이해가 될 정도로 난해한 곳도 있었지만 처음 접한 딸의 창작 소설에 적잖이 놀랐다.
아빠인 나는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날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글을 쓴다. 길을 걷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메모를 한다. 출근 버스에서도 필 받으면 달콤한 잠을 포기하고서라도 글을 써 내려간다. 심지어 회사에서 업무를 보거나 회의 시간에도 메모를 한다. 회의 시간엔 핸드폰을 대놓고 보지 못하니 노트에 대신 적어 놓고 나중에 핸드폰 메모장에 옮겨 적는다.
이렇게 찰나를 놓치지 않고 메모하는 이유는 나는 내 뇌의 암기 능력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메모는 초안이란 안도감이 있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무작정 써 내려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의 뇌가 나의 생각을 검열하지 않는 면죄부를 부여하기 때문이리라.
반면, 컴퓨터를 켜고 워드나 한글에 글을 쓰는 날은 이상하리만치 내 생각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참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쨌거나 나의 메모 습관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딸이 봐 온 것 같다. 부모인 엄마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자녀들의 타고난 습관 덕분인 것 같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나의 메모 습관 덕분에 아찔한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도 있다. 출근길에 좋은 생각이 떠올라 가던 길을 멈추고 길거리에서 글을 쓰다 보면 가끔 회사 출근 버스를 놓칠 뻔한 순간도 맞이한 적이 있다. 버스를 타기 위해 남은 거리를 전속력(그래 봐야 중년의 잰걸음이지만)으로 달린다. 심장이 빠르게 움직이며 헐떡거린다. 그렇지만 기발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놓았다는 안도감과 희열이 뒤섞인 기쁨이 더 크다.
은율이에겐 보물 1호가 있다. 바로 낡은 핸드폰이다. 이 핸드폰은 할머니가 새 모델로 교체하면서 버린 목숨이 다한 오래된 핸드폰인데 애지중지하며 들고 다닌다. 주로 카메라 기능과 메모하는 기능을 사용하지만 가방 속에 소중히 넣고 다닌다. 그 소중한 낡은 핸드폰에 차곡차곡 써 내려간 초등학생 딸의 첫 장편 창작 소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 재앙의 시작
그 옛날 우리에게 잊혔던 그곳,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숲을 소중히 여기지 않아 숲이 파괴된 그곳.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그러므로 숲의 계약은 끊어졌고 약속은 쥐 죽은 듯이 사라졌다. 범죄의 사람들이 풀려나고 '숲의 재앙'이라는 두려움이 시작되었다. 이름하여 재앙의 시작
제1장 두려움의 시작
숲의 계약이 끊어지면 '누가 누군지 영혼을 잃고 그들의 노예가 된다'라는 주의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주의도 조금만 믿었지 생각은 돈뿐이었다. 그런데 숲의 계약이 끊어져서 모든 사람들이 거의 ‘그들’에게 잡혔다. 그런데 그들에게 모두 잡힌 건 아니다. 안 잡힌 사람은 그들에게 말을 걸 협상인이다. 협상인은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했고 이러지 말라고 라는 뜻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바로 얼음의 신이었다. 그리고 협상인의 우두머리는 불의 신이었다. 그리고 불의 신은 모험을 떠날 거라고 중대한 발표를 했다. 그리고 떠날 사람을 정했다. 떠날 사람 중 한 명은 바로 스파이였다. 얼음 신의 스파이였다. 스파이 이름은 ‘스라’였다. 약삭빠르고 혼자만 아는 비겁한 놈이 뽑혔다. 불의 신은 그가 잘 살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잘 살지만 언제 어디서 배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했지만 그들이 스라를 알 리가 있나 모두 찬성했다.
제2장 협상인의 움직임
이제 모험을 떠날 준비는 다 됐다. 이 모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것의 비밀은 불의 신 마음속에서만 숨겨져 있는 진실이겠지. 한참을 걸었을까 불의 신의 힘이 빠져가고 있었다. 인간은 괜찮지만 불의 신은 얼음에게 힘이 뺏겨서 체력이 부족한 것 같다. 조금 쉬다 다시 가려는데 그 앞에 바로 얼음 신전이 있었다. 왜 왔는지 다수가 물었다. 불의 신은 제물을 바치려고 왔다고 했다.
제물은 무엇일까 모두가 궁금해했다. 돼지도 없고 가져온 게 없는데 무엇을 바치라는 걸까? 불의 신께선 어떤 마음일까? 한참의 침묵 속에서 불의 신께서 한마디 했다."제물은 여기 있다" 그리고는"제물은 바로 인간이다"라는 소리에 인간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중 한 명이 "인간 중 누구이죠?"라고 말하니 불은 " 바로 스라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두가 놀랐다. "스라는 얼음의 스파이다"라는 불의 신의 말에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 불의 신은 스라가 얼음의 스파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제3장 제물의 반항
그냥 잡혀 갈 스라가 아니다. 도망가려는 찰나에 장벽에 둘러 싸인 신전에 그냥 꽝 부딪혔다. 불이 그냥 왔을 리 없다. 얼마나 꼼꼼하고 다시 확인하는 성격인데. 그리고 기막힌 타이밍에 얼음이 왔다. 수는 불 쪽이 적다. 그러니까 얼음 쪽이 힘이 세다고 볼 수 있다. 불은 후퇴할 수밖에. 후퇴하여 불은 다시 작전을 짰다. 그중 한 명이 "불님 이제 어떡하죠? "라고 물었지만 불의 신은 충격에 휩싸여 머리가 띵했다. 불은 돌아오자마자 지쳐 쓰러졌다. 불의 마음속은 ‘힘만 있었다면 다 죽일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겠지.
제4장 불의 모습
불은 힘이 돌아왔다. 그리고 한 명을 시켜 스라를 감옥에서 꺼내 왔다. 또 한참을 걷고 신전에 도착했다. 스라를 제단에 올려놓고 의식을 시작해 끝이 났지만 왜 안 죽었냐고 묻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불이 "영혼이 없지 않으냐!"라고 말하자 진짜 그랬다. 그러니 불은 얼음의 힘만큼 자기 힘을 다시 원상복귀시켰다. 그러자 그 누구와 붙어도 이길 자신 있어 보였다. 그래도 침입할 땐 숨 죽이며 얼음의 기지에 왔다.
하지만 얼음은 눈치가 빠르다. 불이 온 걸 알고 얼음은 공격 준비를 했다. 하지만 불은 한 개도 안 무섭다. 얼음은 나와 이제 힘이 비슷하기 때문에 얼음이 공격해도 다 막았다. 당황한 얼음은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불은 힘이 돌아와서 그런가 제군들이 좀비에 다치고 있어도 신경도 안 썼다. 불은 얼음의 신을 없앨 생각뿐이었다.
제5장 드리운 과거
불이 얼음을 녹이자 어떤 소녀가 있었다. 불도 어떤 소녀로 돌아왔다. 예전 둘은 단짝 사이였다. 그러나 저주로 인해 둘은 원수 사이가 된 것이고 둘은 서로 죽여도 다시 살아나 원수 사이로 지내게 한 것이었다. 악몽은 이제 끝났다. 죽었던 사람들도 살아났다. 범죄자의 도시도 사라졌다. 다시 숲의 계약이 지어졌고 다시는 깨트리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모노 시티는 그렇게 숲의 계약이 계속 이어져 갔다.
그런데 만약 후손들이 이 악몽을 다시 깨운다면?
우선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준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소설을 읽느라 머리가 아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처음엔 스토리와 등장인물의 연결 고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100% 딸이 지어낸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봤던 만화 영화나 동화 책 또는 TV 드라마에서 본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편집하여 재생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인 나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사용한 단어도 적절했고 무엇보다 스스로 장편의 글을 멈추지 않고 썼다는 노력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