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권의 책을 출간한 작가이지만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3가지나 갖고 있다. 오늘은 내가 글을 쓰는 조금은 독특한 나만의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 한다'라고 내 어린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요했었다. 지청구에 가까운 명령이었다. 아버지는 꼭 이 명령을 화가 난 상태에서 어린 나와 남동생에게 주입시켰다.
착한 아들 콤플렉스에 걸린 것처럼,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이 말한 것처럼, 난 억지스러운 아버지의 욕망을 쉽게 무시하지 못하고 젊은 날을 살아왔다. 삶이란 고된 여행길에서 문득문득 아버지의 음성이 내 귀를 후비고 들어왔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삶에 끌려 다녔다.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환청이 된 아버지의 지청구는 상처 난 부위에 소금을 뿌리듯 내겐 삶의 숙제였고 욕망이었고 쓰라린 고통이었다. 내가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작가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설명했다. 난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읽어 내려갔다. 어쩌면 아버지가 내 준 숙제의 답을 찾을 수도 있겠단 기대를 품은 채. 그녀에 따르면, 삶은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의 삶을 글로 남김으로써 평범한 일상도 인류의 역사에 남도록 돕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도 역사가 될 수 있다니 얼마나 가슴 벅찬 말인가? 솔직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역사는 주로 왕이나 귀족 또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을 포함한 소수의 삶을 통해서 한 시대를 살짝 엿보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온전히 보여주는 진정한 역사는 평범하지만 국민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서민들의 삶 속에 깃들여져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늘도 언젠가는 역사라는 이름으로 변해 갈 것이다. 달리 말해, 나는 오늘을 살고 있지만 동시에 잠재적 역사 속에서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작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을 자세히 후세에 전달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도 기록으로 남기면 후세에겐 소중한 역사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작가가 되기 위한 삶의 자세도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역사가 될 일상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작가는 모든 사물의 이름을 알아야 하고 관찰 노트를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들은 일상처럼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하나의 관심을 더하고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메모했다가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쓰고 묵혀 역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날 우산을 집어던지고 과감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웅덩이로 뛰어 들어가 그곳에 떨어지는 빗방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가 글을 쓰는 첫 번째 이유는 작가가 되어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를 나의 이름과 함께 후세에 남기기 위해서다.
내가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는 치유 때문이다. 난 2016년 2월부터 3가지 습관을 실천해 오고 있다. 벌써 3년이 훌쩍 넘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 2줄'이란 습관이다. 습관을 시작하기 전에 난 회사 보고서 이외엔 글을 써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처음엔 일기 형식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회사에서 일하며 받았던 스트레스 상황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스트레스 상황을 글로 쓰기 시작하니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글을 쓰는 두 번째 이유는 상처 받은 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의아스럽겠지만, 스트레스받는 상황을 글로 차분히 써 내려가다 보면 내게 상처 준 상대가 이해가 되는 신비한 경험도 자주 겪는다.
내 월급은 아내가 관리한다. 그리고 난 용돈을 받는다. 올해 봄이었다. 아내가 나의 급여에서 내 용돈을 이체하다가 나의 카드 값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예상치 못한 내 용돈 세무조사의 모티브는 아내가 느낀 허탈감과 불안의 합작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월급을 받는데 카드 값이 빠져나간 통장 잔고는 거의 바닥 수준이었다. 허탈했다. 밑 빠진 통장 잔고는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난 아내의 불안을 이해하기에 '통장에 돈이 없구나?'라고 공감해 주었다. 그리고 자진 납세하듯 카드 값을 어디 썼는지 분석해 보자며 팔을 걷어 붙이는 시늉을 했다. 아내는 내 카드 값부터 분석하기 시작했다. 왜 내 것부터 해야 하지?라고 난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아내는 냉큼 내가 미용실에서 염색한 금액을 보고 '다음부턴 집에서 염색하면 안 돼?'라고 짜증을 섞어 말했다. 조금 뒤 연타를 날렸다. '왜 이렇게 책을 많이 사?'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새 책 대신 알라딘이란 중고서점을 이용하란 압박이었다. 기껏 해봐야 몇 권 안될 텐데 아내는 불안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외부통제 즉 본인이 아닌 타인 또는 환경부터 통제하려는 본능에 충실했다. 난 억울했지만 다음 달부턴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 내 카드 값 목록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난 통장 잔고 바닥 사건의 주범이 무엇인지 가히 짐작이 갔다. 아내도 모를 리가 없다. 이번 달엔 가족 크루즈 여행도 다녀왔고 아이들 학원비 등 큰돈이 들어가서 그런 것인데 아내는 내 쥐꼬리만 한 용돈의 사용처를 물고 늘어졌다.
나도 기분이 점점 나빠져 갔다. 하지만 예전처럼 화를 내며 내 억울함을 따지는 대신, 갈등을 피하기 위해 아내와 있던 서재 방을 조용히 나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글을 쓰다 보니 아내의 불안이 이해되었다. 물론 나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화가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글은 그런 나의 나약함까지도 어느새 다독여 주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세 번째 이유는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나는 지난 3년 6개월 동안 좋은 습관을 실천하며 다양한 삶의 변화를 경험했다. 직장 다니며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썼더니 2권의 책을 출간했다. 26년간 피우던 담배도 끊었고 다이어트로 10kg 체중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KBS 1 라디오, SBS 스페셜, 삼성전자 사내 방송에도 출연하는 영광도 얻었다. 대학원, 기업체, 백화점, 과학고, 시청 등에서 강연도 했다.
이런 나의 변화는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내 딸들이 습관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아내도 동참했다. 습관 가족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과 직장 동료들에게도 좋은 습관을 전파하고 있다. 나의 습관 노하우를 주변으로 전파하는 강력한 도구가 바로 나의 글 쓰기 습관이다.
아들러가 말한 것처럼, 잘못된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의 목적이 좌절되어 잠시 낙담한 상태에 있을 뿐이다. 난 용기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통해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고 싶다. 이것이 바로 글은 잘 못쓰만, 내가 오늘도 글을 쓰는 3가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