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하면 아이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한 프로그램인 <아이 습관홈트> 1기가 공식적으로 처음 시작되는 날이었거든요. 이 날을 위해 1년 전부터 시범적으로 아이 습관 만들기 프로그램도 운영해 왔고, 수 차례 토론과 회의를 거쳐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온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었죠.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것이 말이 쉽지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참 많더라고요. 단톡방에 부모님들 초대하고 운영 규칙 설명하고 아이들은 별도의 단톡방에 초대한 뒤 또 아이들만을 위한 운영 규칙과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느라 정신없이 아침을 보냈습니다.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삐 시간을 보내고 열정을 불태웠는데도 이상하게 묘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뭐랄까. 심장에 매달려 있던 커다란 바위 덩어리가 갑자기 복부 아래로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마음이 허탈해졌습니다. 수많은 일을 처리했는데도 뭔가 부족한 것 같고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실수로 빠뜨린 것은 없는지, 보완할 부분은 없는지 나의 뇌는 계속 나에게 쫑알댔습니다. 평생 그랬던 것 같아요. 오래 동안 정성을 들인 일을 폭풍처럼 처리하고 난 뒤,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찾아오는 이 허무함. 이것이 도대체 어떤 감정일까요?
어린 시절 저의 아버지는 무척 엄했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기준은 하늘에 닿을 만큼 드높았고 작은 일도 완벽하게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셨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이야기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뜨거운 여름 뙤약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고추 밭의 잡초를 뽑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풀을 뽑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호미로 재빨리 잡초를 제거해 나갔고 3개 밭고랑을 마무리 한 뒤 아버지를 쳐다보면 아직도 1개 고랑도 끝내지 못하고 쩔쩔매고 계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하도 답답해서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이렇게 굼벵이처럼 일의 속도가 느린지 확인하러 가 보면 아버지는 풀을 뽑고 나서 작은 돌도 고추 밭 밖으로 던지면서 밭에 광을 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일의 속도보다 당신 마음에 들 정도로 완벽하게 고추 밭의 잡초를 제거해야만 직성이 풀리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런 완벽주의는 자식들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에게 일이든 공부든 칭찬을 들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버지에게 ‘우리 아들 장하다’ 란 말을 듣고 싶어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1등도 해 보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폭풍처럼 일하고 난 뒤에도 제가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명쾌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2달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책 속에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한동일 교수님이 쓰신 ‘라틴어 수업’에는 이런 구절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모든 동물은 성교 후에 우울하다
언뜻 듣기엔 성적인 표현 같아서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열정적으로 고대하던 순간이 격렬하게 지나고 나면, 인간은 자기 능력밖에 있는 더 큰 무엇을 놓치고 말았다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뜻이었습니다. 유명한 가수들을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이 됩니다. 무대 위에 있을 때는 열성적인 팬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공연을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을 때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몇 날 며칠을 준비해서 강연하고 난 뒤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맥이 탁 하고 풀리는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고 최고 높이에서 다시 하강할 때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느낌 아시죠?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은 찰나처럼 지나가고 그 빈 공간을 우울함이 잽싸게 채웁니다. 강연할 때 시작하는 말을 좀 더 세련되게 말할 수 있었는데 라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대목에서 침을 삼키다가 목소리가 갈라졌던, 청중은 눈치 못 챘을지라도, 아찔한 순간도 떠오릅니다. 아쉽고 또 아쉬운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내 허탈감이 폭풍처럼 밀려들어옵니다.
하지만 폭풍처럼 일한 뒤 느끼는 이 허탈함은 쓸모없는 부정적 감정일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이 느낌을 느끼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언가에 열정을 쏟아야만 맛볼 수 있는 감정입니다. 온 정성과 에너지를 한 가지 일에 쏟아부어야만 가능한 감정입니다. 머리로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소중한 감정입니다. 최소한 소중한 무언가에 나름 최선의 노력을 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어제보다 더 성장하고 있는 것이겠죠. 다만 얼마만큼 성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줄자가 있다면 조금은 덜 답답하겠지만,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폭풍처럼 일하고 난 뒤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다시 도전해야죠. 열정을 쏟아 일을 완수하고 정점에서 허무함을 느낀다 하더라도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죠. 이런 도전과 희열, 허무함과 우울함의 색깔들이 제 인생을 아름답게 채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득 마가렛 대처의 말이 떠오릅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날을 생각해 보라. 그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히 쉬기만 한 날이 아니라, 할 일이 태산이었는데도 결국은 그것을 모두 해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