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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범용의 습관홈트 Aug 16. 2020

쓸모있는 나의 유머 습관

유머 감각이 날 구원하리라

팀장이 갑자기 회의를 소집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갑작스러운 회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기적이고 예정된 회의가 아닌 갑작스러운 회의 소집은 폭탄을 머금은 듯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도 팀장은 아시아 지역의 판매를 2배로 늘릴 전략을 짜 오라는 상부의 오더를 받아온 날이었다. 몇 년간 피땀 흘리며 노력해도 안되던 일을 하루 회의를 통해 어떻게 해결책을 만들 수 있겠는가?


회의에 참석한 동료들의 얼굴을 잽싸게 스캔해 본다. 입은 삐죽 튀어나왔고 두 눈은 바닥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이 모습을 참지 못하고 팀장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순간 직장 동료들은 하나같이 회의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고 들어 오는 다이어리에 무언가 끼적거리는 시늉을 해댄다. 침묵은 금인 시간이 도래했다.


그때 누군가는 적막을 깨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팀장만 입술이 부르트도록 떠든다. 그리고 한 명씩 지목하기 시작한다. 다행히 이 지목 놀이는 내 순서의 예측이 가능할 때가 많다. 시계 방향이냐 아니면 반대 방향이냐 기준에 따라서 내 지목 순서가 계산된다. 내 앞의 고참이든 후배든 이미 지겹도록 보고했던 내용 중 한 부분을 자신 없는 목소리로 뱉어낸다. 결국 내 차례까지 왔다. 나의 싸구려 유머가 이번에는 효과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총대를 다시 고쳐 맨다.


“팀장님, 오늘 이 전략만 만들면 일찍 퇴근해도 되는 건가요?”


일단 뱉어 놓고 팀장의 얼굴을 살핀다. “그래. 알았어. 말해봐” 난 팀원들 몇 명과 눈을 맞추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을 이어간다.


“팀장님이 이 방에 계시면 아이디어가 안 나오니 저희끼리 회의를 해서 퇴근 전까지 올리면 어떨까요?”


이렇게 목적 지향적인 팀장을 강제로 몰아내고 그다음부터 팀원끼리 회의를 시작했다. 물론 팀장이 회의실을 나가는 순간 억울함과 신세 한탄의 하소연이 몇 분간은 지속이 되었다. 그럼에도 팀장이 나간 뒤부터 경직된 회의실 공기는 환기가 되기 시작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서로의 생각이 교류하는 회의다운 회의가 시작이 될 수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리고 가난을 핑계로 아버지는 인내심의 바닥을 자주 나에게 보여 주셨다. 아버지는 가난이 주는 스트레스를 어찌할 줄 몰라 어린 나에게 욕설과 구타로 풀었다. 제길. 지금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나도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주눅이 든 채 눈치만 살피는 독 안에 든 생쥐의 신세와 같았다. 아버지가 속사포로 쏘아 대는 꾸중과 욕설은 어린 나의 귓구멍과 연약한 심장이 소화시키기엔 너무나 끔찍한 잔인함이 묻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난 성인이 되어서도 공포스러운 상황에 직면하면 어린 시절 생쥐로 돌아간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런 이유로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나 집안 어르신들이 정치 얘기를 할 때 누군가 화를 내며 싸우는 장면을 참아내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나의 싸구려 유머라도 괜찮다면 그 긴장된 상황을 부드럽게 채색해서라도 그 공포를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성공률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옥에 티랄까. 내 의도대로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는 경우는 10번 시도에 2번 정도 성공이고 대부분은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상황)가 되어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시간의 마디마디를 발랄하게 채색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은 이유는 내가 만든 해학의 쉼표가 그다음 새로운 시간의 마디로 이어지는 어느 지점에 윤활유 한 방울을 뿌려 미래의 대화는 부드러워지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유머 감각은 약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이다. 먹잇감을 구하기 힘든 추운 겨울, 늑대 두 마리가 배고픔을 못 이기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서로 싸움을 시작한다. 긴장감이 늑대 무리 전체로 퍼져 나간다. 그때 늑대의 리더가 이 싸움에 개입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늑대의 리더가 두 늑대를 힘으로 제압할 줄 알았는데 우두머리가 선택한 개입방법은 다름 아닌 장난이었다. 우두머리는 싸우고 있는 늑대 중에 힘이 센 늑대에게 장난을 건다. 장난을 통해 동료로 향했던 공격성과 난폭함을 잊게 만든다. 이처럼 유머는 늑대의 리더에게도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싸움에 능하지만 난폭한 늑대는 리더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유머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의 세계에서도 난폭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일순간에 무장해제시키는 탁월한 힘이 있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동기부여 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성공의 85%는 인간관계에 달려있으며 훌륭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핵심이 바로 ‘웃음’이라고 강조했다.


웃음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너무나 많다. 미국 인디아나주 볼 메모리얼 병원에서는 외래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웃음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을 줄여주고 우리 몸에 유익한 호르몬을 많이 분비하게 하여 '하루 15초 웃으면 이틀을 더 오래 산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존스홉킨스 병원은 '웃음은 내적 조깅’'이라는 서양 속담을 인용해 웃음의 효과를 소개했다.


웃음이 내적 조깅이라니 무슨 의미일까? 웃음은 감기를 예방케 하고 치료도 해준다. 웃음은 암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웃으면 살도 빠진다. 웃음은 상대방에 대한 의심을 녹이며, 편견의 벽을 허물며 편안함을 준다. 이렇게 웃음은 조깅처럼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리라.




이런 이유로 나는 ‘유머를 곁들인 말하는 습관’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 이런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화학자인 조셉 캠밸이다. 그의 저서 ‘신화와 인생’엔 음악처럼 내 귀를 잡아당긴 문장이 있다.



여러분이 현재 처한 상황을 희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여러분은 영적인 거리를 얻게 된다. 결국 유머감각이 여러분을 구원하리라



얼마나 멋진 말인가? 유머 감각이 우리를 구원한다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유머감각이 인간의 공격 심리를 즐거운 언어로써 승화시키는 삶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살벌하게 치고받고 싸우는 상처투성이 상황을 적절한 유머 한 마디가 분위기를 평화롭게 만들어 상대를 향한 총뿌리를 거두게 만든다면 이것이 구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당신은 하루 중 얼마나 자주 웃는가? 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은 하루에 열다섯 번 정도 웃고, 한국인은 여섯 번에서 일곱 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하루에 절반도 안 웃는다.


코로나 19로 요즘 웃을 일이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인이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감정을 조절하고 ‘유머를 곁들인 말하는 습관’을 통해 여유를 갖고 서로의 마음을 녹여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상대방을 향한 총뿌리를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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