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범용의 습관홈트 Oct 18. 2020

안대를 벗어 주세요

대학 졸업 후 처음 입사한 회사는 대기업 화학회사였다.


신입 사원 연수를 거쳐 내가 배치받은 사업부는 플라스틱 발코니와 문을 제조 판매하는 부서였다. 그런데 플라스틱으로 만든 문짝이라니 생소했다. 그 당시만 해도 집 안에 있는 모든 문은 나무로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한 것이었다.


플라스틱 도어는 물에는 강점이 있었지만 나무 문에 비해 무게도 가볍고 디자인도 조악했다. 난 영업부서 직원이었기에 단점이 너무 많은 회사 제품을 고객을 만나 팔아야만 했다. 고객 앞에서 우리 회사 제품의 장점을 강조하며 고객을 설득하는 행동은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아~ 내가 고객이라도 이 제품 안 사겠다’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고 있었다.


나는 거짓말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었는데 월급을 받기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너무나 싫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고객의 수많은 거절과 조롱이 떠올라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듯하다.


이처럼 나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상황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표현한다. 정신 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이것을 ‘갈등’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종종 사람들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또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묵직한 질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인생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치열한 고민은 생략한 채 좀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영어 공부, 부동산 공부, 운동을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한다고 위로하며 일단 열심히 실천한다.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행동들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인지 부조화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나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변화에 성공할 수 있을까? 나의 정체성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 수 있을까? ‘나다움’을 찾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내 준 커다란 숙제이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 숙제를 풀어 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여기 한 명의 심리학자가 우리에게 ‘나다움’을 찾는 방법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과거가 우리가 극복하려던 열등감이나 결핍감을 보여 준다면 미래는 어디로 그 에너지를 옮겨갈 것인지 방향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미래는 그가 과거의 열등감과 결핍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실행에 옮기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완벽해지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뭔가를 하려고 안달이 난 사람은 거꾸로 대단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열등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그 사람의 어린 시절 초기 기억 속에 그 답이 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등감과 직면한다. 나의 형제자매, 친척들, 심지어 엄마 아빠도 경쟁상대로 보고 비교한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없는 것’ 또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생의 동반자인 열등감과 첫 대면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약하고 부족하다는 느낌을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속에서 초기 기억 속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삶의 전략을 선택하고 자주 쓰는 행동(패턴)을 발달시킨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 행동 패턴(생활양식 또는 성격)대로 살아오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인생의 과제는 5개(일, 사랑, 인간관계, 자아, 영성)나 되는데 우리는 어린 시절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발달시킨 그 한 가지 주요 행동 전략으로 주로 맞서 싸우니까 매번 넘어지는 곳에서 다시 넘어진다.


예를 들어 보자.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임원이 여기 있다. 그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부하 직원들을 달달 볶아서 경영진의 무리한 요구 조건도 기한 내에 무조건 처리해 낸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단기간에 고속 승진을 이뤘다. 그는 직장이란 공동체 속에선 분명 성공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부하 직원을 통제하듯 집에서도 동일한 행동 패턴을 사용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통제하려 한다면 어떨까? 청소해라, 신발 정리해라,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라고 명령하고 아이들 공부 가르쳐 주면서도 ‘아니 이렇게 쉬운 개념도 이해 못해? 누굴 닮아서 이렇게 멍청한 거야?’라고 소리를 지른다. 직장에선 성공한 리더 일지 몰라도 가정에서는 빵점 남편, 무서운 아빠인 것이다. 일과 사랑이란 인생의 과제는 대상도 다르고 주제도 다르지만 우리는 이 남자처럼 주로 한 가지 행동 패턴으로 다양한 숙제를 해결하려다 보니 힘들어하는 것이다.


우리라고 뭐 다를까? 우리 또한 열등감이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한 가지 행동 패턴으로 문제를 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 색안경을 벗어야만 세상은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 알록달록 아름다운 색깔로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말이다.





예전 모 방송국 TV 프로그램 중에 ‘게릴라 콘서트’가 있었다. 그 당시 유명한 가수들을 섭외한 후 하루 동안 길거리 홍보만으로 관객을 모아 콘서트를 연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명한 가수라고 하더라도 하루 만에 축구장 크기의 관중석을 사람들로 가득 채운다는 것은 힘든 미션이었다. 초대된 가수들은 트럭을 타고 다니며 전단지를 뿌리고 고래고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홍보에 열중한다.


그리고 약속한 콘서트 시간이 다가왔고 게릴라 콘서트의 주인공인 가수들은 무대로 올라가기 전에 안대를 끼고 진행자의 도움을 받아 무대 위로 올라선다. 진행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관중들은 침 삼키는 것도 조심할 만큼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다. 설상가상으로 가수의 눈은 안대로 가려졌으니 관중석에 몇 명이나 앉아 있는지 감을 잡기란 쉽지 않다. 진행자가 무대 위 가수들에게 몇 명이나 온 것 같으냐는 상투적인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운명의 순간이 찾아온다. 진행자가 가수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자~지금부터 안대를 벗어 주세요”



이 말과 동시에 가수들은 안대를 벗고 관중석에 얼마나 많은 청중들이 앉아 있는지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살핀다. 그리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 그 순간 초대된 가수들 중 몇 명은 눈물을 흘리고 몇 명은 털썩 주저앉기도 한다. 가수와 청중들 그리고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모두 감동의 도가니에 흠뻑 빠져든다.


방송 프로그램을 빗대어 설명했지만, 이렇게 안대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늘 보던 대로 보고 행동했던 대로 행동하니 인간관계로 힘들어하고 갈등을 키운다.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은 우리 삶의 난관 즉 우리가 매번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우리 스스로 인지하고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향이 있다고 제시해 준다. 불현듯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지 않은가?  


“자~ 지금부터 안대를 벗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