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변하니 아이도 변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무슨 말이야? 천천히 똑바로 말해봐.”
예상치 못한 저의 거친 반응에 당시 네 살이었던 딸은 당황했는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러고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얼굴빛도 어두워져 갔습니다.
아이는 세 살 때 본인의 선택이 아닌 부모의 결정으로 싱가포르에 끌려가서 먼 타지에서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당시 저 는 MBA 학위를 받기 위해, 아내는 직장에 다니기 위해 싱가포르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세 살밖에 안 된 딸의 눈에 그곳은 희한한 나라였지요. 유치원에서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인도네시아어 등 다국어를 가르쳤지만, 한국어는 제외되었습니다. 아이들의 피부와 머리 색깔도 각양각색이었고 생김새도 달랐습니다.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부랴부랴 유치원에 도착하면, 아이는 대부분 혼자 장난감을 갖고 구석에서 놀다가 아빠 얼굴을 유리창 너머로 확인하고는 하루 중 한 번만 웃을 수 있는 벌을 받는 아이처럼 있는 힘껏 저를 향해 웃어 보였습니다.
저를 향해 달려와 품에 안기자마자 가방을 부리나케 집어 들고는, 유치원 밖으로 나가자고 손을 잡아당기곤 했습니다. 유치원 입학 전에는 아이가 더 외로웠으리라 짐작됩니다. 엄마는 회사에, 아빠는 학교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빠져나왔고, 인도네시아어만 할 줄 아는 보모와 단둘이 집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먼 타지인 싱가포르에서 낯선 외국인들과 함께 회사 생활을 하려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신경을 써야 했고, 저 도 39세란 늦은 나이에 학위를 받기 위해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이해하려고 영어 공부에 더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딸은 부모로부터 모국어를 배울 시간도 충분히 갖지 못 한 상황에서, 4가지 외국어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지만, 정작 소통할 언어 하나 없는 고독한 유치원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는 언어 혼란 증세를 겪게 되었고, 생각을 멈추고 입을 닫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사고가 터진 거지요.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뚜렷하게 전달할 언어를 익히지 못했으므로 처음에는 띄엄띄엄 5가지 언어를 혼합하여 저와 아내에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한 문장 안에 각기 다른 외국어가 뒤섞인 딸의 말을 해석하는 것이 처음에는 신기했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기함과 재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이내 근심과 짜증으로 변해갔지요. 아이가 가엾은 작은 입술로 뱉어내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으나 도무지 추측이 되지 않자, 성급한 성격의 저는 조금씩 지쳐갔고 점점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더 심각한 사실은, 아이가 세상을 향한 마음마저 닫아가고 있음을 알고도 부모인 제가 바쁜 일상을 핑계로 애써 모른 척해버렸다는 것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그렇게 힘든 유년시절을 2년 동안 타지에서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쉽게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 1년이 지나고 여섯 살이 되었지만, 아이의 모국어 실력은 좀처럼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듣기와 말하기 수준은 심각했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하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동문서답을 하기 일쑤였지요. 하루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은율아, 오늘 유치원은 어땠어?”
“응~, 재미있었어요.”
“어떤 친구랑 놀았어?”
“지유랑 놀았어요.”
“왜 지유하고 노는 것이 좋아?”
“응, 지유랑 카드놀이했어요.”
‘왜?’라고 물었는데,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아이의 모국어 실력이 심각한 수준임을 깨닫고, 이때부터 책을 조금씩 읽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새로운 단어를 자연스럽게 들으면 모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2~3일 정도는 퇴근 후에 딸에게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평소에는 2권 정도, 야근이나 회식 등으로 몸이 피곤한 날은 1권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5권 정도의 동화책을 2년 가까이 꾸준히 읽어준 것이지요. 그러자 비록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어휘로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모국어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왜?’라는 질문에도 곧 잘 올바른 답을 말할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책을 읽는 습관이 조금씩 형성되어갔습니다. 그리고 운명적인 그날, 2016년 5월 6일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는 제가 스티븐 기즈의 『습관의 재발견』이란 책을 읽고 작은 습관을 실천하기 시작한 지 약 3개월이 지나던 시기였습니다. 여기서 ‘작은 습관’ 이란 남들이 정한 높은 목표를 그대로 따라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거창한 습관이 아니라, ‘팔 굽혀펴기 1회 실천하기’와 같이 작고 사소한 습관을 의미합니다.
그 날 오후, 저와 은율이는 각자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은율이는 제가 책을 읽고 난 후 노트에 감동받은 문장을 메모하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더니, 아빠처럼 예쁜 메모 노트를 만들고 싶다며 노트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읽고 있던 책인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제자’라는 단어를 골라 적었습니다. 저와 함께 사전을 찾아 ‘제자’라는 말의 뜻을 알아본 후 예문까지 적어놓았지요.
그런 다음 노트표지에 ‘아빠는 노트 선생님’이라고 또박또박 직접 써놓았습니다.
이 한 권의 노트가 ‘아이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 은율이는 저와 함께 ‘아이 습관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약 3년 동안 매일 포기하지 않고 습관을 실천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아이 작은 습관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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