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잘 산다는 것의 의미

by 이범용의 습관홈트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이 공포스러운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나의 어린 시절부터 중년이 된 현재까지도 오랜 기간 동안 껌 딱지처럼 나의 뇌 어느 한 구석탱이에 달라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인 것 같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공포스럽다. 사촌 형이 군대 휴가를 받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워서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군대 이야기를 한 토막 들려주었다. 비무장 지대에 근무했던 사촌 형은 북한군이 밤에 몰래 3.8선을 넘어와 군인들을 죽이고 군인들의 목을 가져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어린 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때부터 나는 죽음의 공포에 대하여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이후 나는 청소년 시기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일상 속에서 불현듯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이 공격해 올 때마다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이 공포스러운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머리를 좌우로 심하게 흔들면서 입으로는‘으아아아아~’라고 소리 지르며 껌 딱지처럼 달라붙은 죽음의 공포를 떼어 내려고 무던히도 애 쓰면서 살았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초가을 아침 6시. 30대 초반이었던 나는 출근하는 길이었다. 정장을 빼 입고 뾰족한 검은 구두와 묵직한 손목시계를 차고 내 몸에서 폴폴 풍기는 기분 좋은 향수 냄새를 맡으며 가뿐하게 집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려고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포스러운 생각을 떨쳐 버리기 위해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은 채 비명을 지르며 200미터 거리를 전력 질주하여 지하철역까지 뛰어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 어쩔 수 없는 슬픈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죽음을 두려워한다. 왜일까?





영화 코코는 ‘죽은 자의 날’로 불리는 멕시코 전통의 축제를 모티브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영화 '코코' (출처: 구글 이미지)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은 죽으면 이생을 떠나 저생으로 이동한다. 그렇다고 저생의 삶이 영원한 것도 아니다. 만약 이 세상에 아무도 죽은 자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죽은 자의 나라’에서도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결국 핵심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망자에 대한 ‘기억’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이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공포가 엄습해 오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의 경우는 내가 죽는 순간 나의 사랑스러운 딸들 그리고 아내와 이별해야 하는 사실이 두렵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들을 더 이상 볼 수없다는 두려움, 아내와 딸들과 더 이상 함께 추억을 만들지 못한다는 서글픔 그리고 그들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를 더 이상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 등이 죽음에 대한 공포의 원산지라고 생각한다.


이렇듯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즉 죽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후세의 사람에게 남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죽은 후에도 인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도 있으며 또한 남겨진람도 슬픔을 치유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을 통해서 후세에 전하고 싶었던 것, 그것을 남길 수만 있다면 나는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 이런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다. 이처럼 잘 사는 것에 전념하면 미래는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된다.

이 말을 달리 해석한다면,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가 마음에 걸린다면 그것은 지금 현재의 삶을 충실히 잘 살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 3년 동안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많이 사라졌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매일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출사표를 3번 읽고 3번 필사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출근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퇴근 후, 성스러운 종교 의식처럼 팔 굽혀 펴기 5회 습관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의 루틴을 실천하면서 죽음의 공포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규칙적인 계획을 세우고 습관을 통해 실천한다는 것은 삶을 충실히 그리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런 나의 삶을 통해 후세에 전하고 싶은 것, 이것은 내가 죽어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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