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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범용의 습관홈트 Apr 02. 2019

나의 불행했던 과거에게, 이젠 안녕

더 이상 가짜 곰에 속지 않기를

초등학교 4학년 때의 또렷한 기억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충청남도 당진 시골 마을. 집으로 들어가는 초입길 위에는 100년도 넘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바람에 흔들리며 샛노란 은행 잎을 우수수 털어 내고 서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노란 은행 잎이 소복이 쌓인 길 위에서 분주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은행 잎 (출처: 픽사 베이)


엄마는 은행 잎을 주어서 흐르는 냇물에 씻은 다음 마대 자루에 담고 계셨다. 그 당시 은행 잎은 혈액 순환에 좋다는 어느 기업의 TV 광고 덕분에 시장에 내다 팔면 돈을 벌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화라는 것을 보기 위해 커다란 약속을 한 상태였다. 어린 나에겐 돈이란 것이 없었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다.


학교 육성회비도 간신히 낼 정도로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기둥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허약하고 초라한 경제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다고 말을 꺼내는 것은 욕먹을 각오를 해야만 할 만큼 무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영화를 보러 가게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엄마가 은행 잎을 주워서 씻은 다음 포대에 넣으면 영화를 볼 수 있는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신나서 일했다.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오니 내 손은 더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일이 끝났고 나는 당당히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돈 주세요”


엄마는 조금 당황한 듯 말했다.


“지금은 돈이 없어. 이 은행 잎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돈이 생기지”


나는 처음으로 나의 목적이 좌절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입에서는 원망의 목소리가 엄마를 공격했고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유일하게 나를 믿어주고 위로해 주던 엄마에게 배신을 당하니 상처가 더 크고 따가웠다.


난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없구나. 내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절대로 남을 믿어서는 안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타인을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의학박사이며 성형외과 의사인 멕스웰 몰츠는 그의 저서 ‘성공의 법칙’에서 인간의 두뇌와 신경 체계는 자동적으로 주변 환경과 도전에 적절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산속 길을 걷다가 갑자기 회색 곰을 만나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칠 것이다. 이처럼 공포에 대한 반응은 자동적이고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진다.


그런데 만약 산속 길에서 마주한 회색 곰이 진짜 곰이 아니라 곰으로 분장한 영화배우였다면 어떨까? 만일 당신이 그 영화배우를 진짜 곰이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의 감정이나 신경 반응도 진짜 곰을 만났을 때와 정확하게 일치했을 것이다.



가짜 곰 (출처 : 픽사 베이)

또 다른 예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가족들로부터 우리가 가난한 것은 사악한 부유층 사람들과 부패한 정부 때문이란 불만을 듣고 자란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답습한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처한 불우한 상황을 맹목적으로 진실이라고 믿으며 자동적으로 순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어두운 성장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했다는 기업가의 이야기를 매스컴을 통해 종종 듣는다.


또는 악랄한 범죄자에서 의사나 변호사로 변신해서 활동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듣는다.


이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길래 어두운 과거를 이겨내고 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들은 책을 통해 영향을 받거나 TV에서 보는 사람들, 정신적인 스승의 영향, 삶의 체험 등을 통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어온 것에 도전하고 그것이 순전히 상상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잘못된 오래된 상상을 새로운 진실로 대체했기 때문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이처럼 누구나 부정적인 자아 이미지를 바꾸고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고 받아들이면 어떤 사람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뚱뚱하고 기력이 없는 사람도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고, 하는 일마다 서툴고 어색한 사람도 능력 있고 우아한 사람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이며, 프로이트, 융과 함께 세계 심리학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아들러도 어린 시절 초기 기억에는 기본적인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세상은 위험한 곳이야', '살아가는 것은 힘들어', '나는 능력이 없어',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을 믿어서는 안 돼'처럼 잘못된 지각을 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이 모든 어린 시절 기억은 단편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기억들이다. '가짜 곰'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다시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엄마가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린 시절 기억 탓에 ‘나는 내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모든 우선순위를 나에게 두고 성공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라는 사적 논리를 갖고 수 십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껴야 나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왜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그릇되게 해석하고 과거에 얽매여 괴롭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내가 다시 노란 은행 잎이 흐드러지게 펼쳐진 시골집 앞에 서 있다.


나는 엄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엄마는 왜이리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걸까?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플텐데 힘들다는 내색없이 일을 하고 계실까?


엄마도 가족을 위해 늘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간다. 그리고 아들은 엄마의 말을 차분히 듣기 시작한다.


엄마: 아들 미안해. 친구들에게 못 간다고 이야기해 주렴.


아들: 엄마 이해해. 다음번에 돈 생기면 그때는 줘야 해 알았지?


엄마: 친구들과 약속 못 지켜서 어떡하니?


아들: 친구들이 이해해 줄 거야


엄마: 역시 우리 큰아들! 엄마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은 너 밖에 없구나.


아들: 엄마 내가 성공해서 엄마 더 이상 고생 안 하게 해 줄게.


아들의 듬직한 말을 듣고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우는 엄마의 등을 다정히 두드리며 아들은 엄마를 등에 업는 시늉을 한다.


엄마: 너는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야. 크게 될 사람이야. 엄마는 꼭 네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어.


아들: 응. 엄마. 나도 그렇게 되려고 태어난 사람같아.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이렇게 어린 시절 내 눈으로만 귀로만 가슴으로만 품고 있었던 그릇된 장면을 재해석하고 나니 엄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느껴졌고 다른 사람에 대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나의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다. 새로운 자아 아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즉, ‘나는 내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모든 우선순위를 나에게 두고 성공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라는 사적 논리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


 그 새로운 가치관은 다음과 같다.



나는 사랑받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선하다.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감있게 누구보다 더 나 자신을 신뢰하며 타인의 소중함을 알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도우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불행했던 나의 과거여~


그럼 이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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