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자각 타임
요즘 대학생들은 대2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중2병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대2병이라니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다.
대학교 2학년이 되면 몇 가지 변화가 찾아온다. 우선 학과 공부의 변화다. 1학년 때는 대부분 교양이나 기초과목이었다면 2학년 때는 반대로 대부분 전공과목이 수업을 차지한다. 또한 TV나 선배들, 친구들을 통해 취업의 압박을 경험한다. 3학년부터 취업 준비를 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말을 듣고 이것저것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은데 아직까지 해 놓은 것은 없어서 나만 뒤쳐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불안하고 막막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생기는 무기력감이 바로 대2병이다.
평상시 평온하기만 했던 내 삶에서 어느 날 갑자기 냉엄한 현실을 깨닫게 되면서 대2병은 시작된다. 대학 1학년 때까지 캠퍼스의 낭만도 즐기고 친구들과 술 마시고 밤늦게까지 놀다가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도서관에서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선배 후배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난 도대체 누구지?’라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경험하면서 걱정은 시작된다.
현타는 장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집에서 라면을 먹으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람들의 운동하는 사진을 보다가 문득 ‘아~ 이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점점 불어나는 내 몸을 보고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할 때 현타가 온다.
남자 대학생의 경우는 대학교 2학년 즈음 군대를 가야 한다는 현실에 마주하게 된다. 대학교 1학년 때 캠퍼스 커플로 풋풋한 사랑을 시작하지만 군대를 가야 한다는 현실을 자각하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가 애매한 시기가 온다고 한다. 이렇게 현타가 세게 오는 경우 대부분은 무기력감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타는 대학생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들은 입사한 지 1년도 안되어서 퇴사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퇴사 이유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 연봉 불만, 상사와의 갈등, 잦은 야근, 기업 문화 부적응 등 다양하다. 험난한 취업난을 뚫고 입사는 했지만 직무나 근무 조건 그리고 조직 생활과 인간관계가 힘들어 조기 퇴사 및 이직을 결심한다.
그리고 퇴준생(퇴사를 준비하는 사람이란 뜻의 신조어)의 길을 걷는다. 40대는 어떤가? 100세 시대에 인생 2 모작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을 시작하는 나이가 바로 40대다. 우리는 이렇게 인생 곳곳에 잠복해 있다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현타의 공격에 맥을 못 추고 방황한다. 그 방황이 길어지면 무기력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 심한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나약한 인간인 우리가 현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아래 사진 한 장이 있다. 중년의 남자가 나체로 앉아 있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놀란 눈을 하고 중년의 남자를 응시하고 있다. 이 사진은 한 안경 회사가 제작한 코믹 광고의 한 장면이다.
왜 이 남자는 나체로 주방에 나타난 것일까?
이 남자의 목적은 사우나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옷을 벗고 사우나 입구를 찾고 있었다. 때마침 사우나 입구 옆에 위치한 주방에서 요리사들이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고 요리가 익어가면서 내뿜는 하얀 연기로 주방이 가득 차게 되었다.
이 하얀 연기 때문에 나체의 중년 남자는 주방이 사우나의 입구인 것으로 착각하고 주방 기기 위에 걸터앉아 사우나를 즐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점점 주방의 하얀 연기가 걷히면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부끄러워하는 이 중년 남자는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 광고 속 중년 남자의 목적은 사우나였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노출증 환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세계 3대 심리학자이며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다. 개인심리학에서는 드러난 증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위에 소개한 광고처럼, 개인 심리학은 중년의 남자가 선택한 방법(주방에서 나체로 앉아 있는 장면)이 아니라 그 방법으로 무엇을 달성하려 하는지 목표(사우나 즐기기)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오로지 목표를 정상화해야만 습관과 태도를 고칠 수가 있다. 목표를 새롭게 정립하면 자연스럽게 나쁜 습관, 잘못된 태도를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 가엾은 중년의 남자에게 목표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남자의 목표는 ‘올바른 장소에서 사우나 즐기기’ 일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 광고주는 안경을 사야 한다고 홍보하지만 더 근본적인 정상화된 목표는 '시력의 회복'일 것이다. 그래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주방의 출입구와 사우나 출입구를 명확히 구분해 내고 그의 목표인 ‘올바른 장소에서 사우나 하기’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목표를 정상화하는데 서툴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목표를 찾는데 땀을 흘리기보다는 좀 더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그리고 남들이 세운 목표를 기웃거린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듣고 회사 업무를 하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지 않는 옷을 벗어던지고 다른 옷을 찾아 나선다.
지난달에 강연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20대부터 시간을 관리하고 돈도 아껴 쓰며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다가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새로운 목표로 갈아탄다고 했다. 그는 마치 물건을 사듯 목표도 쇼핑하고 있었다. 이 목표가 좋아 보이면 이 목표를 세웠다가 저 목표가 좋아 보이면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우다 보니 열심히 살지만 삶은 늘 제자리였다.
그는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난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은 바뀌는 것이 없지?’
바로 인생이 그에게 현타의 시간을 던져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목표를 정상화하기보다는 이 허탈함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 방법으로 제2, 제3의 목표를 만들어 그 허무함을 채우려 했던 것이다.
그가 빼먹고 실수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충분한 고민 없이 다른 사람의 근사한 목표를 카피하다 보니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온 것이다.
나에게 딱 맞는 옷은 따로 있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기 위해서는 내 팔의 길이, 목의 길이, 허리둘레 등 내 몸의 치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이 지루하고 번거로울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종종 우리는 그 과정을 빼먹고 쇼 윈도의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성급히 구매하여 입고 다니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우리 몸에 맞는 옷을 입음으로써 우리의 목표를 정상화할 수 있을까? 방법은 간단하다. 내 몸의 치수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개인 심리학의 창시자인 아들러는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과거가 우리가 극복하려던 열등감이나 결핍감을 보여 준다면 미래는 어디로 그 에너지를 옮겨갈 것인지 방향과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미래는 그가 과거의 열등감과 결핍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실행에 옮기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등감과 직면한다. 나의 형제자매, 친척들, 심지어 엄마 아빠도 경쟁상대로 보고 비교한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없는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생의 동반자인 열등감과 첫 대면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이 약하고 부족하다는 느낌을 오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목표를 세운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 속에서 초기 기억 속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삶의 전략을 선택하고 자주 쓰는 행동(패턴)을 발달시킨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그 행동 패턴(생활양식 또는 성격)대로 살아오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인생의 과제는 5개(일, 사랑, 인간관계, 자아, 영성)나 되는데 우리는 매번 한 가지 전략으로 맞서 싸우니까 매번 넘어지는 곳에서 다시 넘어진다.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은 우리 삶의 난관, 즉 우리가 매번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우리 스스로 인지하고 성찰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또 다른 방향이 있다고 제시해 준다. 왜곡된 초기 기억 속 상황을 다른 사람의 눈과 귀와 가슴으로 이해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신념을 세워 자아를 회복시켜 준다.
그래야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내가 평생을 걸만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난 왜 노력해도 내 삶은 늘 제자리일까?라는 현타가 불쑥 찾아오더라도 나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다.
[사례 소개] 과거를 재해석하고 새로운 신념을 세운 나의 이야기
https://brunch.co.kr/@habittogether/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