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내가 커피값 몇 천 원보다 못하다는 뜻이야?
내가 아내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푸념한 소리다. 올해 초 우리 가족은 오랜만에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미술 전시회에 들러 작품들을 감상하고 다시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이동 중이었다. 나는 그 전날 잠을 늦게 잤고 여행 내내 운전해서 그런지 피곤하고 졸렸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 가 있을 테니 커피 한잔을 사다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그런데 커피를 사 오기로 한 아내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어이가 없었지만 왜 빈손으로 왔는지 물었다. 아내도 조금 당황했는지 서둘러 부연 설명을 했다.
“관광지라 그런지 커피 한 잔에 7,500원이나 하더라고. 바가지 쓰는 것 같아서 그냥 왔어. 가다 보면 다른 커피숍 있을 테니 거기서 사 먹자”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서운해서 아내에게 짜증 섞인 말로 푸념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 내내 운전을 오랫동안 해서 피곤하고 졸린 상태였기에 운전하며 따뜻한 커피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커피 마시기라는 목표를 정했었다. 그런데 고작 몇 천 원 때문에 나의 목표가 좌절되어 기분이 무척 불쾌해졌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 학교, 직장, 동호회 등 나 이외 타인이 한 명이라도 있는 공동체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바로 인간관계가 잘못되었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고 이로 인해 상처 받고 아파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을까?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상처를 주고받으며 아파할까?
그 이유는 세상에 동일한 성격은 없기 때문이다. 성격은 손가락 지문과 같이 모두 다르다. 성격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의미는 바로 사람들도 서로 다 다르다는 뜻이다. 물론 사람들이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공통적인 면을 서로 공유하며 사랑하며 도와주며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의 목적과 다른 사람의 목적이 다를 때 우리는 갈등이 생기고 나의 마음을 이해 못해주는 상대가 미워진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힘든 것이다. 나와 내 아내의 사례처럼 가족 구성원 간에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올해 초부터 아들러 심리분석 전문가 교육을 받고 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성격 우선순위 분석 Workshop>에 참가했었다. 이 Workshop의 가장 큰 목적은 인간의 성격은 손가락 지문과 같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다시 알아차리기 위함이었다.
참고로, 성격 우선순위는 선호하는 행동 전략을 기본적인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첫 번째 유형은 “우월성 추구”이고 이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내가 맡은 일은 성공적으로 해야만 하고 정해진 일은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유형은 “통제 관리 추구”이고 이 사람들의 특징은 삶을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중시하며 원하는 결과를 확실하게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유형은 “즐거움 추구”이고 이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유형은 “편안함 추구”이고 이들은 지금 여기에서 만족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은 그의 욕구에 따라서 행동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4가지 우선순위 내에서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 4가지 전략을 조금씩 다 사용하며 삶의 과제들을 해결하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오직 한 가지만을 두드러지게 사용하게 된다. 그럼 우리는 성격유형별로 얼마나 서로 다를까?
그 다름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Workshop 이 열렸다. Workshop 첫 번째 미션은 각 성격 유형별로 선호하는 행동과 스트레스받는 행동을 조사하여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동일한 유형의 사람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우월성 추구' 유형이기에 그 테이블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래 사진처럼 선호하는 행동과 싫어하는 행동이 4가지 성격 유형별로 다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성격 유형별로 몇 가지 예를 들면, '우월성 추구' 유형이 선호하는 행동은 스스로 알아서 하기, 새로운 목표, 멀티 태스킹 등이며 싫어하는 행동은 남과 비슷한 것, 게으름, 자존심 상함 등이었다.
'통제 관리' 유형이 선호하는 행동은 계획적 성취, 나만의 세계 (나만의 시간 계획), 정리 등이었고 싫어하는 행동은 목적지 없는 여행, 부담, 무모함, 낯선 환경 등이었다.
'즐거움 추구' 유형이 선호하는 행동은 소통, 인정, 칭찬, 관심, 주목받는 것 등이었고 싫어하는 행동은 거절, 왕따, 예의 없음, 평가받는 것, 무미건조함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편안함 추구' 유형이 선호하는 행동은 누워서 TV 볼 때, 내버려 둘 때, 아무것도 안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등이었고, 싫어하는 행동은 할 일 많을 때, 멀티 태스킹 해야 할 때, 잔소리하는 것, 설명 길 때, 일하고 있는데 건들 때 등이었다.
이 4가지 성격유형이 얼마나 다른지 Workshop의 두 번째 미션을 보면 더 극명하게 밝혀짐을 알 수 있다. 미션은 바로 슬로건을 만드는 일이었다.
우선 우월성 추구의 슬로건은 “Just do it”이었다. 다른 성격 유형들은 오직 1가지의 슬로건을 내건 반면 우월성 추구는 여러 개의 슬로건을 종이에 빈틈없이 적어 놓았다. 이 또한 우월성 추구 유형을 잘 설명하는 특징 중 하나였다.
통제 관리 유형의 슬로건은 “생각은 깊게, 마음은 뜨겁게”였다.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여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일을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슬로건이었다.
즐거움 추구 유형의 슬로건은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모두의 꽃이 되고 싶다”이었다. 우선 색깔이 화려하다.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멀리서도 잘 드러났다. 그리고 모두의 꽃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공동체 속에서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어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잘 드러났다. 그런데 이 슬로건을 보고 통제 관리 유형의 사람들은 모두의 꽃보다는 단 한 사람의 꽃이 되고 싶다고 말해 서로 다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편안함 추구 유형의 슬로건은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길이 있다”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한계를 잘 인지하고 있어서 상황 인정이 빠르다. 그래서 미련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이처럼 그들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간섭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소리 없는 외침이 슬로건을 뚫고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르다.
아내가 커피 대신 빈손으로 돌아온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 중이었고 '빛의 벙커'라는 미술 전시회를 참관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는 순간이었다. 2일 동안 여행하는 내내 내가 운전을 했기에 좀 피곤해서 커피를 한잔 사서 운전하며 마시기로 했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자동차로 이동하고 아내가 커피를 사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아내가 빈손으로 왔다.
이유인즉슨 관광지 커피숍이다 보니 커피값이 다른 지역보다 2배 이상 비쌌기 때문에 그냥 왔다는 것이다. 그래 봐야 3~4천 원 차이인데 그 돈이 아까웠나 보다. 그리고 나의 최초 목적(기대)인 따뜻한 커피 마시며 운전하려던 계획은 보기 좋게 좌절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감정이 올라와 나를 화나게 함을 깨달았다. 나의 피곤함과 수고하는 값이 몇 천 원도 안된다고 생각하다니 아내는 나를 도대체 무엇으로 보는 것인가?
하지만 잠시 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의 성격과 아내 성격은 다르다. 우월성 추구 유형인 나의 우선순위와 통제 관리 유형의 아내의 우선순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의 목적은 잠시 내려놓고 아내의 목적과 아이들의 목적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삶을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지역보다 커피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니 불편함을 느낀 것이다. 그 가격이 불합리하다고 느꼈고 커피숍의 바가지에 분노를 느낀 것이다. 아내의 목적은 안정적인 소비 속에서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떤가? 아이들은 분명히 엄마 아빠와 함께 웃음이 피어나는 자동차 여행을 목적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의 목적만이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아내와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고 그들도 그들의 목적이 있음을 깨닫자 조금은 화가 가라앉았다.
그럼 이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내에게 잠시 짜증을 냈던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해야 할까? 아님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말을 상냥하게 걸어야 할까?
나의 천편일률적인 '우월성 추구'라는 성격 유형만으로 세상의 모든 이벤트에 대처한 나의 삶의 전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사고의 폭이 조금 확장되자 좀 더 다양한 성격 유형을 상황에 맞게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야만 새로운 관점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남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