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곤 느닷없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다. 이유인즉슨, 5월 말에 진행한 우리 팀의 조직 활성화를 기획하고 만족스럽게 마무리한 것에 대한 격려 차원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본연의 업무 이외에 조직문화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5월 푸른 숲, 힐링’ 이란 테마로 용인시 고기리에 위치한 숲 속 캠핑장에서 게임도 하고 저녁도 함께 먹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도움을 준 동료 2명과 함께 팀장님의 차를 타고 구내식당의 뻔한 음식 냄새를 뒤로 한 채 회사 밖의 보리 굴비 집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이미 상이 차려져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굴비가 먹기 좋게 이미 가시가 손질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굴비 옆에 얼음물이 사발에 담겨 있었다. 얼음이 둥둥 떠 있는 차가운 물이 담긴 사발의 용도는 바로 방금 한 밥을 찬 물에 말은 후 숟가락 위에 밥과 굴비 한 조각을 올려서 먹으라는 이 식당의 노하우였다.
뜨거운 밥이 얼음물과 섞이니 밥알이 쫄깃쫄깃해졌다. 그리고 짭짜름한 굴비와 적당히 차갑고 쫄깃한 밥알이 입안에서 섞이니 그 맛은 기가 막혔다. 굴비와 얼음물은 서로 엮여서 나에게 맛의 새로운 세계를 선물해 주었다.
보리굴비를 맛 본 비슷한 시기에, 아내 덕분에 구글 코리아 글로벌 비즈니스팀의 조용민 부장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강연에서 그가 강조한 내용 중 하나는 지금 당장 필요 없어 보이는 기술도 다른 기술과 엮으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구글 코리아 조용민 부장님과 함께
특히 ‘엮어 내는 힘’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엮어 내는 힘은 똑똑한 것과는 무관하며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고 차분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역설했다.
예를 들어, 은행 강도의 CCTV 촬영 사진이 거리감 때문에 흐릿한데, 구글에서 연구한 모자이크된 사진을 역으로 복원해 나가는 기술과 엮여서 은행강도의 흐릿한 이미지를 선명하게 복원시킴으로써 범인을 잡는데 활용될 수 있다.
나도 엮어 내는 힘의 수혜자다. 나의 습관 중 하나는 글 쓰기 2줄이다. 그런데 습관 초기에는 이 습관을 실천하기가 무척 힘들었었다. A4 용지 1장도 아니고 고작 2줄 쓰는 것이 무엇이 힘드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글쓰기는 창작의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보고서만 주구장창 쓰던 평범한 직장인이 개인적인 감정의 글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능력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뇌가 풍을 맞은 듯 생각이 마비되는 날이 많았었다.
그런데 나를 구원해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미장원에서 머리 염색(새치 커버용 검은색)을 위해 오랫동안 대기해야 했었다. 그때 나는 '나를 변화시킨 놀라운 작은 습관' 칼럼 4편의 글을 포스팅할 계획이었지만 겨우 제목만 정한 상태였다. 시간도 때울 겸 핸드폰을 켜고 메모장에 칼럼의 각 주제별 꼭지만 정하려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칼럼의 뼈대를 순식간에 완성하게 되었다. 그 힘은 바로 조각조각 메모한 짧은 글들 덕분이었다. 책을 읽다가 스치는 생각들, 메모 노트를 다시 읽다가 읽는 책과 연결되는 생각의 조각들, 회사 동료와 친구와 또는 가족과 대화 속에서 마주치는 아이디어들, 샤워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다가 불현듯 먼 우주에서 별똥별이 되어 내 뇌리에 착륙하는 지혜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 놓았었는데 이 생각의 조각들이 서로 섞이고 연결이 되면서 글쓰기가 재미있어졌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다시 찾지 못할 아이디어인 것처럼, 절박하게 메모하는 습관 덕분에 나에게도 엮어 내는 힘이 생겼다. 매 순간 기록하는 습관이 창작의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종종 구원해 주고 있다.
얼음물과 굴비, 흐릿한 사진 복원 기술과 범인 검거, 메모의 조각들이 충돌하여 만들어 내는 글쓰기, 우리는 모두 이렇게‘엮어 내는 힘’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