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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 Sep 19. 2019

퇴사에 관한 고찰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선택을 한 상태지만 이에 따른 불완전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흔히들 인생을 긴 마라톤에 비유하는데 그 과정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그 과정과 결과 가운데서 희비를 겪는다. 어쩌면 선택을 하고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삶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확히 1년 8개월, 회사 생활을 했고 이달 초 퇴사를 결심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인간은 불투명한 미래를 불안해하는 존재다. 그 불안과 두려움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도 한다지만 불필요한 불안으로 인생을 낭비하기도 한다. 이 같은 불안은 우리가 소위 과감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멀리 내다보는 것을 가로막는다. 쉽게 말해 눈앞에 현실에,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에 불안해 하며 스스로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어찌 보면 너무 바쁜 현대인들에게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선택의 가치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당장 일 하지 않으면 1-2만 원이 아까운 상황 속에서 나에 대한 깊은 사유, 삶의 방향성과 무게를 저울질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 직장을 선택했고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일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적성과도 맞았고 재미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래, 나와 100% 맞는 직장은 없어. 이정도면 일도 괜찮고, 워라벨 보장에 급여도 나름 높고 사람들과도 크게 부딪히지 않았으니 이 곳에 남는 것이 좋은 선택이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배 부른거야."



 


하루에도 수회 고민의 기로에 섰다. 내가 하고 있는 생각에 대해 주변에도 많은 의견을 구했지만 대체로 회사에 남을 것을 권유했다.(내가 봐도 객관적으로 퇴사를 결심할만한 큰 악조건이 없다) 이쯤 되자 헷갈리기 시작했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게 맞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물론 이 곳에 남는다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필수 생존이 보장된)은 보장될 것이다. 회사에 큰 불만은 없지만 이번에 퇴사를 고민하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내가 모르는 세상,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더 늦기 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과 가치관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가 생각하는 가장 초월적인 위치인 위버맨시로 가는 과정에 대해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비유를 든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명령에 복종하며 사는 존재를 말한다. 척박한 사막에서 힘든 고난과 고통을 참고 버텨내는 정신을 상징한다. 명령만으로 움직이는 낙타는 어느 순간 명령을 거부하고 나는 하고자 한다는 자유의지를 갖고 사자가 된다. 기존 사회의 고정적 가치를 깨뜨리고 자유를 외치기 위해서는 사자가 돼야 한다. 그러나 사자에게는 자유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은 없다. 마지막 단계인 어린아이는 매번 새로운 상상과 창의력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힘을 가진다. 사회가 원하는 도덕적 가치나 주류 신념, 고정관념에 매몰되기 보다는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앞서 언급했지만 현대사회는 과거 어느 시절보다 바쁘고 피로하다. 인간은 한 사회 내에서 성과를 통해 순위가 매겨지고 그 순위를 기준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적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성과사회는 깊은 사색도, 무위와 휴식의 가치도 무시된 채 '할 수 있다', '해야만 한다'는 명령어를 입력하고 각 개체를 낙타로 길들인다.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쉬어도 된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끈기와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면 모든지 할 수 있다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보고 막연히 그렇게 믿어왔다. 내가 해내지 못한 것은 내가 더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결국 모든 실패는 내가 잘못했다는 결과로 귀결됐다. 최근 우리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수저계급론도 이 같은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 모든 잘못을 나에게서 찾다보니 그 비난의 화살이 부모에게 확장된 것이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다. 당장 눈 앞에 닥친 학업, 남들이 다하니까 따라하는 스펙쌓기, 직장생활 등... (물론 항상 현실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무만을 쫒다보면 삶의 방향성, 궁극적인 가치를 잊고 맹목적으로 남들을 따라 달리곤 한다. 30살, 이제는 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다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더 깊게 사유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당장 누군가가 무엇이 좋은 것(good)인지, 무엇이 옳은 것(right)인지 묻는다면 확고한 잣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서 결심하게 됐다. 끊임없이 달려온 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고 삶을 돌아보며 더 옳은 방향으로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동력을 찾아 나설 생각이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길들여진 낙타에서 사자로, 어린아이로.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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