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곡 Shut down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를 샘플링한 힙합 곡으로, 그 자체로 익숙하고 캐치한 바이올린 멜로디를 차용하므로써 순식간에 대중에게 친숙함을 준다. 그 자체로 강렬하고 꽉 차는 곡을 사용했다보니, 다른 사운드에는 거의 힘을 빼고 베이스와 비트 정도만 삽입되었다. 게다가 송폼도 매우 단순하고 간출하다. 벌스와 코러스의 송폼은 멜로디만 다를 뿐 사실상 비슷하고, 댄스 브레이크 마저 그 폼이 거의 비슷하다. 멜로디와 베이스가 빠진 프리 코러스만이 새로움을 더하는 수준이다. 매우 걸출한 포인트 사운드가 있고, 그와 어울리는 멜로디를 잘 만들어냈고, 그를 가득채우는 멤버들이 있으니 음악 자체가 심심하지는 않다. 다만 꽂히는 부분 없이 흘러가는 것도 사실이다. 블랙핑크의 전작들에 비해 사운드에 힘을 빼고 미니멀하게 곡을 끌어간다는 점에서, 클래식 샘플링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멋지게 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을만 하다. 그렇다고 극찬 받을만큼 멋진 곡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무난하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정도의 곡.
수록곡 yeah yeah yeah는 블랙핑크의 전작들의 수록곡들이나 love sick girl과 같은 곡들과 궤를 함께 한다. 그러나 신디사이저 포인트나 박자감 덕분에 80년대의 레트로한 느낌도 물씬나는데, 블랙핑크 특유의 시원하면서도 청량한 곡에 레트로가 묻어나는 매력적인 곡이다. 그러나 shut down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곡 전개는 조금 아쉽기도 하다. Typa girl이나 shut down에서는 조금 이질적이었던 지수의 보컬도 이 곡에선 그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전반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눈에 띄는 포인트라면 단순한 곡 전개와 미니멀한 사운드 구성이 아닐까 싶다. 크게 변주되지 않는 것은 물론, 고저가 크지 않는 구성의 곡들은 전형적인 빌보드 힙합 곡 같다는 인상이다. 그 덕에 세련됨은 얻었지만 지루함도 얻었다. 다만 멤버들의 가창 - 특히 리사와 제니의 쫀득한 랩 - 덕에 지루하다는 인상은 조금 줄었지만.
지난 pink venom 때 언급했듯, 이번 앨범에도 역시나 새로움은 없다. 굳이 따지자면 80년대 디스코나 신스 사운드의 삽입 정도? 큰 구성이나 느낌에 새로운 도전은 없다. 여전히 블랙핑크를 능가하거나, 최소한 대체할 만큼 힙합, 팝 장르를 쫀득하게 살려내는 그룹이 한국에 없고, 그렇기에 블랙핑크 노래에 계속 손이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사실이다. 또 어마무시한 이들의 컴백 주기도 한 몫할 것이다. 주기가 기니까, 딱히 또 들었던 곡 같지 않은 거다. 그래서 블랙핑크는 큰 도전 없이도 꾸준히 좋은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고, 당분간은 계속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굳이 모험을 할 계획도, 생각도 없을 테다. 내가 YG여도 그렇게 할 테고. 그럼에도 청자로서 나는 이토록 걸출한 그룹인 블랙핑크의 새로움을 여전히 기대하게 된다. 부디 다음 앨범에는 본 적 없는, 들은 적 없는 블랙핑크를 만날 수 있길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