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곡 DICE는 엔믹스가 표방하고자 하는 믹스팝의 정석과도 같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인트로 - 벌스 - 프리코러스 - 코러스 구성의 상대적으로 정석적인 곡 전개를 보이는 1절에서만도 대략적으로 장르가 2번은 바뀐다. 재지한 피아노로 시작하는 인트로에서, 갑자기 비트와 베이스가 강조되면서 힙합적인 느낌을 강조하고, 신디사이저까지 빠지고 베이스와 비트만 남기고 모든 게 빠진 프리코러스에서 갑자기 화려한 브라스까지 추가되며 달리기 시작하는 코러스까지. 그 뒤로는 갑자기 트랩 비트가 나오면서 멤버들의 래핑이 쏟아져나온다. 그 뒤로 이어지는 릴리의 강렬한 보컬은 브라스 사운드와 함께 재지한 느낌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댄스 브레이크는 또 트랩 비트를 기반으로 한 힙합곡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인트로 부분의 재지한 피아노와 문을 여는듯한 느낌의 연출, 그리고 코러스의 화려한 브라스 사운드가 마음에 든다.
이토록이나 분석할 것이 많은 타이틀곡이라서 그럴까? 이 곡을 처음 들어본 인상은 '갑자기?' 그 자체였다. 예고하지 않고 바뀌는 곡의 흐름은 청자를 당황스럽게 한다. 곡의 호흡 자체가 빨라서인지 한 부분에 적응할 틈을 주지 않고 또 장르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니 '이게 왜 이렇게 가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메인 테마로 가지고 가고 있는 두 부분의 장르 - 재즈와 힙합 - 가 겹치는 부분이라곤 전혀 없는 매우 이질적인 장르의 곡들이라는 것도 문제가 된다. 게다가 곡의 두 부분이 바뀌는 빈도가 지나치게 잦다. 이러니 완전히 다른 곡을 구역을 정해두지 않고 멋대로 섞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엔 없는 것이다. 세 번쯤 듣고 나면 작곡가가 의도했던 바가 무엇인지 그제서야 이해가 되고, 그제서야 곡의 각 부분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꼭 지금이어야만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최근 가요계의 흐름을 살펴보자. 곡의 길이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고, 이해하기 어려운 곡들은 거의 없다. 간결하고 중독적인 멜로디와 단순하다면 단순한 곡 전개가 유행이다. 원래 차트인하는 곡들은 그래왔다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요즘엔 그 경향성이 더 두드러진다. 간혹 가다 호흡이 길고 조금은 난해한 곡들도 사랑받아왔고 그런 대로 괜찮은 평가를 받아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증거로 최근 남자 아이돌들은 영 힘을 못 쓰는 경향을 보인다.
엔믹스는 멤버 각각의 뛰어난 능력치와 예능감, 훌륭한 비주얼로 아이돌 팬덤 사이에선 꽤나 높은 화제성을 만들고 있다.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아이돌 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뭐하나. 주시하고 있는 아이돌 팬들은 최소한 본진이 있거나, 아니면 잡덕이다. 엔믹스한테 진심으로 돈 쓸 사람은 몇 없다는 거다. 이게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근본적인 차이라면 차이다. 보이그룹은 이렇게 난해하고 어려운 곡을 들고 나와도 피지컬 앨범 판매량으로, 공연으로 돈을 벌어온다. 그런데 걸그룹은 그런 경향성이 상당히 낮다. 헌신적으로 공연을 보러 가고 앨범을 구매하는 팬덤이 아니라는 거다.
전형적이지 않은, 굳이 따지자면 걸그룹보다는 보이그룹의 전략을 취하는 엔믹스가 나는 물론 좋다. 최근엔 보지 못한 화려한 브라스를 선두로하는 타이틀곡의 재지하면서도 파워풀한 흐름도, 앨리스의 하트여왕을 연상케 하는 검은색과 붉은 색 메인포인트의 뮤직비디오도 좋다. (물론 대뜸 등장한 네온색 의상은 당황스럽지만..) 제와피에선 거의 최초로 시도하는 세계관도 좋다. 강렬하고 어려운 군무를 맞춰나가는 소녀들의 무대도 좋다. 그래, 다 좋다. 그런데 지금 이걸 할 때냐고 묻고 싶은 거다. 최근엔 보이그룹들의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아이돌에 관심을 두고 있는 청자들은 줄었는데 남자아이돌은 과포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올 수 있는 걸그룹들의 강세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엔믹스는 정말 정말 난해하고 어려운 곡을 들고 나왔다. 하다못해 데뷔곡 O.O는 챌린지 만들 거리라도 있었지 이번엔 그런 포인트도 안 보인다. 믹스팝이라는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좀 더 쉬운 곡을 들고 올 수도 있었다. 일례를 들어보자면 넥스트레벨도 따지자면 믹스팝이다. 샘플링이라는 방법도 있고, 좀 더 한 부분에 할애하는 부분을 넓혀서 이해하기 쉬운 곡을 만들 수도 있다. 뭘 의도한 건지는 알겠는데 엔믹스가 더 성장하려면 지금 팬 한 명이 아쉽다. 그런데 DICE는 팬덤 유입엔 정말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대중적인 곡으로 팬덤 유입시킨 뒤에 DICE가 나왔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정말 아쉬움만 그득히 남는다.
수록곡 COOL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웅장하면서도 스산한듯한 느낌을 주는 클래시컬한 느낌의 스트링, 강한 베이스가 어우러져 발라드이지만 발라드 같지 않은 팝곡이다. 우아하고 몽환적이면서도 딱 요즘 노래 같은 느낌이다. 클래식한 느낌을 주로 내세우는 레드벨벳의 곡과도 차이가 있고, 어디서도 들어보지 않은 엔믹스만의 곡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어디를 포인트로 뒀는지 바로 파악이 되는 곡이라 차라리 타이틀곡보다 낫다는 생각도 있다. 물론 스트링 사운드만의 클래식한 느낌과 대체로 시원하고 파워풀한듯한 멤버들의 가창이 꼭 잘 맞는다는 느낌은 안 들지만...근래엔 들어보지 못한 스산하면서도 우아한 곡이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