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자전거
남자들만의 세계였냐고?
그렇지 않다. 넓적바위 아래는 여자들의 세계였다. 여성 전용 야외 목욕탕이다. 바위 가까이는 할머니, 엄마들 자리였고, 끄트머리 쪽은 소녀들 차지였다. 땀으로 얼룩진 몸을 물속에 담그고 정자의 남자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어느 날 밤 이장 아들 홍수가 손전등을 품고 넓적바위에 접근했다. 등 뒤로 꼬맹이들이 낮은 포복으로 따라붙었다. 별안간 켜진 후레시 불빛에 홍수 형 어머니가 뜨악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누나들 장소라 여겼는데…. 홍수형 엄마도 그렇다. 몸빼바지만 꿰입고 쫓아 왔는데, 거의 다 잡아 목덜미를 채기 직전에 걸음을 멈추었단다. 어쩌면 엄마의 본능으로 홍수형인 것을 알았을 거다.
잡힐뻔한 형은 후레시가 물속으로 날아갔고, 그날 밤 동네 머슴방에서 자고 들어갔단다. 냇가 바위 아래에 누나가 가려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곱디고운 누나가 나올 리가 없다.
“기수야, 나 자전거 한 번 타보자.”
“누나 자전거 탈 줄 모르잖아.”
그 와중에도 누나가 자전거 탈 줄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네가 잡아주면 되잖아.”
“어…. 나 잡을 줄 모르는데.”
똑 부러지게 거절 못 하는 성격은 문제를 키운다. 얼버무리면 긍정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기수의 머뭇거림과 어둠이 누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자전거를 빼앗아 쥔다.
“야, 밀어.”
“어어어 누나.”
밀었는지 끌려갔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윗등까지 올라왔다. 자전거를 돌리고 누나의 큰 엉덩이가 의자를 덮었다. 페달까지 다리가 닿지 않았다. 누나는 그렇게 내리막 골목길을 내려갔다. 브레이크가 무엇인지, 자전거가 얼마나 제 맘대로 달리는지 모르고 내려갔다. 마음대로 멈추고 달리는 것으로 알았을까? 본능적으로 짐받이를 붙잡고 뛰었다. 고무신이 벗겨져 날아가고 자전거가 손에서 벗어나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쫓아가야 하나? 고무신을 찾아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잠깐이지만 모든 사고작용이 멈췄다. 짧은 순간이 지나고, 어쩌면 손과 발이 함께 움직였을 것이다. 둘 다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본다.
누나가 서 있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며 서 있었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누나를 만났다. 누나를 만났다는 것은 자전거를 회수할 수 있다는 거다.
자전거가 없다.
누나 옆에 자전거가 없었다. 내 자전거…. 누나의 눈길을 쫓아간 곳에 자전거가 있었다. 시궁창이라 불리는 도랑에 자전거가 처박혀 있었다. 냄새와 오물 가득한 속에 자전거가 누워 있었다. 기수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누나는 평생 몰랐을 거다. 나 갈게 하며 내빼는 누나를 뒤로하고 아까보다 더 큰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핸들이 돌아가고 오물이 잔뜩 묻은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