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5. 자전거 Ⅱ

by 재학

기수는 몸치다.

대부분의 운동에서 잘하는 것이 없다. 몸이 둔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자주 하게 되고, 자주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걷는 것을. 운동을 좋아한다면 그럴 것이다. 몸치가 아닌 몸치이기에 뜻밖에 잘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즉, 예측할 수 없는 실력을 보여 줄 때가 있다.


오늘도 마을 아이들이 타작마당에 모였다. 종구형 명령으로 자치기 먼저 했다. 아이들은 편을 나눌 때 나이가 아닌 실력으로 가위바위보를 한다. 거기서부터 자존심이 상한다. 기수의 실력을 한두 살 어린 동생들과 같게 쳐 준다. 기수의 공격 차례가 되면 수비하는 아이들은 긴장이 풀어진다. 온 힘을 다해 날린 막대는 수비 편 중 누가 받아도 좋은 속도와 높이로 날아 손바닥으로 쏙 들어간다. 어떤 아이들은 자를 치기도 전에 공수의 위치를 바꾸려 달린다. 물론 예상치 않게 멀리멀리 날려 버릴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종구형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지만 아주 가끔일 뿐이다. 구슬치기도 마찬가지다. 골목 생활 1년만 돼도 거리 불문하고 상대편 구슬을 튕겨 내야 한다. 엄지든 검지든 어느 손가락으로 날려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 아이들은 그랬다. 기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코앞에 주먹만 한 구슬도 용케 비켜 간다. 일부러 그러려고 해도 힘들 것이다. 그뿐이라면 다행이다. 기수가 흉내도 내지 못하는 운동이 있다. 두 손 놓고 자전거 타는 것이다. 신기에 가깝다. 물론 한 손만으로 탈 수 있다. 하지만 두 손 다 놓고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묘기다. 대단한 운동 신경을 갖은 아이만이 그렇게 할 뿐이다.


열일곱 살에 도시로 나온 기수는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낮에는 화학약품 도매상에서 약품 배달을 하고, 저녁에 검정고시 학원으로 달려갔다. 시골에서 함께 온 중학교 친구 둘과 변두리 작은 방을 얻어 살았다. 한 친구는 주유소에서, 다른 친구는 구둣방에서 일했다. 구둣방 일을 하는 친구는 솜씨가 좋았다. 배달 가는 길에 일하는 모습을 훔쳐볼 때가 있다. 조그마한 몸을 잔뜩 구부리고 있어 표정을 볼 수는 없다. 무릎 사이에 구두를 놓고 조각칼로 다듬느라 기수가 훔쳐보는 것도 몰랐다. 셋은 바빴다. 늦은 저녁 잠자리에 들 때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사춘기의 즐거움도 도시의 자유도 누릴 여유가 없었다. 기수가 일하는 곳은 사장과 기수 둘뿐인 작은 가게였다. 소주 만드는 회사에서 퇴직한 사장은 자신이 다녔던 회사에 원료를 공급하는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주로 알코올을 납품했다. 트럭으로 실어 나를 만한 양은 아니었다.


짐 발이라 부르는 자전거에 몇 통씩 실어 배달했다. 대부분 사장이 싣고 갔다. 그러면 기수 혼자 가게를 지켰다. 가끔 대학 다니는 사장 아들이 가게에 나오기는 했지만 일을 하지는 않았다. 어느 때이고 대부분 사장과 기수 둘만 있었다. 사장이 있든 없든 기수의 자리는 가게 밖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쪽에 작은 전화기가 놓인 책상 하나는 사장님 자리이다. 크고 작은 화공약품 통이 잔뜩 들어찬 가게에 기수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시내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다 가게 바닥을 물걸레로 닦고 나오고는 했다. 그것도 심심하면 사장의 자전거를 닦았다. 가게 담벼락에 수도꼭지가 붙어 있었다. 전화기 옆에서 졸던 사장이 나오더니 반짝거리는 자전거와 기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책망과 뜻밖이라는 표정이 섞였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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