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9. 자전거 Ⅲ

by 재학

열여덟 봄, 기수는 용두동 철공소 골목에 있었다.

철공소 2층 다락에 살았다. 낡은 선반 기계 뒤로 사다리가 있고, 사다리를 올라가면 베니어합판으로 바닥을 깐 다락이 나왔다. 공원 세 명이 함께 살았다. 스물 중반 형, 기수보다 두 살 많은 애(얘는 애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기수 이렇게 셋이 합판 한 장씩 차지하고 살았다. 나이 많은 형은 다락을 비울 때가 많았다. 일 끝나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가는 날은 여자 친구 자취방에서 자고 오는 날이다. 그 형이 없는 날은 괴로운 밤이었다. 두 살 많은 애가 다락의 왕 노릇을 하려 했다. 기수가 누군가. 호락호락 들어 줄 기수가 아니다. 당연히 긴장의 밤이 되었다. 철공소 망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순간까지 가는 날도 있었다. 그가 갖은 힘은 사장의 사촌이라는 것뿐이다. 그런 날은 다락을 내려와 외출했다. 외출이라고 해봤자 동네를 걷는 것이다. 문을 닫은 철공소 골목은 조용했다. 그 골목을 하염없이 걷다 돌아오면 사장 사촌의 심술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베개가 다락 아래로 날아고, 슬리퍼가 사라졌다. 그렇다 해서 그에게 굽히거나 지지 않았다. 그도 얼마 후 방을 얻어 나갔다.


철공소 거리는 간선도로변을 따라 이어졌다. 도로 양쪽으로 굵고 커다란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있었다. 밑동이 굵은 플라타너스는 중간 부분에서 잘려 나갔다. 잘린 면을 따라 잎이 돋아났다. 손바닥보다 넓적한 잎을 다락방 창문에서 만질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잎에 튕겨 빗물이 다락으로 들어왔다. 일요일 창가에 엎드려 플라타너스 잎을 손바닥으로 받쳐 들고 빗물받이를 하며 놀았다.


무작정 상경한 서울은 낯설었다. 하늘의 별빛만큼 많은 집 중 어느 한 곳도 기수가 쉴 공간을 주지 않았다. 멈추면 안 되는 것처럼 하염없이 걸었다. 한강 다리를 건넜다 돌아오면 날이 밝아왔다. 목적지가 있어 걷는 것이 아닌, 시간을 보내기 위한 걷기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가능하면 시간을 많이 소비할 거리를 택하여 걸었다. 여의도 어디쯤에서 공사장으로 들어섰나 보다. 모처럼의 고요를 만났다. 쌓아 놓은 목재 사이에서 아픈 다리를 쉬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다음 날 다시 간 공사장은 불이 밝혀져 있었다. 서울은 쉴 곳이 없다. 거리를 헤매고 다닐 때 초등학교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오라고 했다. 오지 말라고 해도 달려갔을 것이다. 마중 나온 친구는 얼굴이 판다 같았다. 동그랗게 그을려 있었다. 미처 털어내지 못한 쇳가루가 남아 있었다. 울뻔했다. 마음과 다르게 익살을 부리며 어깨를 부딪쳤다. 기수를 데리고 간 친구는 얼마 후 선반 기계 앞자리를 물려주고 다른 철공소로 옮겨갔다. 월급을 더 받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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