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연
철공소 골목 입구는 대폿집이라 부르는 술집이 두세 곳 있었다.
밤이면 일을 끝낸 공원들이 돼지고기 한두 대(한 근 두 근을 이렇게 불렀다.) 시켜 놓고 두꺼비가 그려진 소주를 마셨다. 소주는 거칠게 마시는가 보다. 주먹질과 욕설이 흔했다. 원수처럼 싸우며 헤어진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아무렇지 않게 깎아 낸 쇠를 들고 머리를 맞대며 작업을 했다.
하루 작업이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철공소는 기수의 공간이다. 잔뜩 녹이 슨 철공소 문을 닫아걸고 저녁을 준비했다. 다락 구석에 밀어 넣은 냄비와 석유풍로를 들고 내려왔다. 납작보리 한 주먹을 끓인 죽에 라면수프를 풀면 훌륭한 맛을 냈다. 수프는 많았다. 철공소 사람들이 간식으로 라면을 먹고 남긴 수프다. 챙겨 반찬으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월급이 54,000원이었다. 이 생활은 딱 6개월만 할 생각이다. 검정고시 학원에 다닐 계획이다. 한 달 학원비가 5만 원 가까이 되었다. 고스란히 저축해야 한다. 한 달 지출이 4천 원 넘으면 안 된다. 4천 원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식량이 한 포대의 납작 보리쌀이었다. 그렇게 6개월을 버텼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저녁을 먹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피곤으로 무너지는 몸을 추스르며 영어 단어장을 넘겼다. 문득 졸다 창문 밖 가로수 잎 바스락 소리에 정신을 차리다 다시 잠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았고, 혼자였던 기수에게 친구가 생겼다. 금송. 서해안 바닷가 마을이 고향이라 했다. 체격이 작았다. 쪼그마한 녀석이 당돌하게 담배를 피워 물고 막걸리도 폼나게 마셨다. 언제나 웃고 떠드는, 심각함 없는 친구다. 둘은 순식간에 친구가 되었다. 일요일이면 남산으로 효창공원으로 싸돌아다녔다. 나팔바지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건들거리고 걸었다. 또래들이 교복을 입고 다닐 때 그렇지 않은 모습은 불편하다. 어색함과 기가 죽지 않으려는 노력이 과장된 행동을 불러 왔다. 극장을 들어가는데 굳이 새치기를 하는 것이라든가 버스에서 학생 표를 내면서 운전사를 빤히 쳐다본다든가 하는 것 등. 치기 어린 행동들이 많았다. 혼자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뭉치면 강해진다. 강해진 둘은 철공소에서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었다.
비 오는 일요일은 갈 곳 없이 없다. 다락에서 뒹굴뒹굴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때에 전 이불에 들어가 영어 단어장을 넘기는 옆에서 우두커니 천정을 바라보던 금송이 말했다.
“나가자. 고기 사줄게.”
“...”
대폿집이라는 곳을 갔다. 처음이다. 유리에 빨간 페인트로 메뉴가 적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연탄불에 익어 가는 고기 냄새처럼 기분 좋게 하는 것도 있을까? 돼지고기 두 대와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다. 금송이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다. 대폿집 유리창 밖으로 던진 시선이 돌아올 줄 모른다. 그러다가 생각난 듯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켰다.
‘이 친구가 왜 이러지? 오늘은 이상한데? 비 때문인가?’
막걸리로 벌게진 얼굴에 담배를 피워 문 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어른 흉내를 내고는 싶었으나 울음소리에 앳됨이 가시지 않았다. 기다려 주자. 무슨 사연이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