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꾸준히 쓰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른다.
종이 위에 쓰인 것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글이 주는 자기 객관화의 힘, 즉, 일기를 쓰면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이는 자기 성찰로 이어진다.
이순신의 고매한 인격도 일기 덕분이다. (서민의 어쩌면 중에서. 경향신문 2019. 10. 16.)
대부분 일기 쓰기는 숙제로 시작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숙제로 빠지지 않는 것이 일기 쓰기다. 일기 쓰기가 주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얻는 게 많은 것 치고 그냥 얻어지는 것 없다. 일기도 그렇다. 자신의 느낌, 기분, 감정,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쓰기 위해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고민 없이, 본능과 경험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의도된 생각과 행동이었든 그렇지 않든 정리를 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느 것이든 쉽지 않다. 의도된 생각과 행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먼저 뇌와 몸이 저항한다.
저항을 이겨내고 습관화시키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저항이 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학습량이 늘어난다. 친구들과 놀 시간은 커녕 학원 숙제 하기도 바쁘다. 일기 쓰기 습관이 오기 전에 마주치는 저항들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몇 번인가 일기 쓰기를 시도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1주일을 넘기기 어렵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은 무척 엄격하셨다.
지켜야 할 규칙을 세워 놓고, 100% 실천하는 학급을 추구하셨다. 선생님의 실천항목 중 하나가 일기 쓰기였다. 매일의 숙제였다. 순응하는 인성, 그렇지 않은 인성의 구분이 없었다. 무조건 써야 했다.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일기를 써 오지 않으면- 지독한 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 먹고 운동장에 나가는 것,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시간, 심지어는 체육시간도 뺏었다.
그 시간에 일기를 써야 했다. 더 지독한 건 화장실(야외변소) 청소를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취향이 다르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렇지 않는 상황이나 물건, 사물이 누군가에게는 끔찍이도 싫은 대상이 되는, 바로 그랬다. 자유시간을 뺏기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데, 냄새에 극도의 민감성을 갖고 있다. 노란 소변 때가 끼어 있는 야외변소 청소를 피하기 위해서 기를 쓰고 썼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하루를 보냈어도 일기만은 빼 먹지 않고잠자리에 들었다. 초등학교 4학년을 그렇게 보냈더니...그 뒤로 일기를 쓰지 않으면, 뭔가 빠진 듯이 허전했다.
습관이 삶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