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것 없어

4. 어둠의 시간

by 재학

‘잘 나갈 때를 조심해라.’

노력에 비하여 너무 큰 과실은 불안하다.

일이 수월하게 풀릴 때 언뜻언뜻 스치는 불안감이 있다. 예감이 맞아떨어질 때 더 불안하다. 날벼락이었다. 통관이 늦어진다는 보고가 올 때까지만 해도 낙관했었다.

‘곧 통과되겠지.’


실려 보낸 고추는 전량 폐기처분했다.

선진국은 진즉부터 엄격한 농약 허용 기준(PLS)을 적용하고 있었다. 그 기준을 알지 못했다. 설령 알았다 해도 무시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측정하는 기술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만큼 PLS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위약금에 신용까지 하락했다. 회사가 휘청거릴 만큼 타격이 컸다. 해외시장을 개척했다는 착각에 대출을 최대로 끌어다 썼다. 거기에다 선수매한 농가에 지급할 돈과 운송비, 수입업자의 손해배상까지 들어왔다. 위기의 순간에 사장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사장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임시방편으로 모면하려 하지 말자. 눈앞의 이익보다 미래를 바라보자. 회사 하루 이틀 할 것 아니잖아.’


이후 몇 년간 회사는 어둠의 터널을 지났다.

직원의 1/3이 떠났고, 남아 있는 직원들도 월급이 제날짜에 들어온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많았다. 돌이켜 보면 그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아픔 없이 승승장구했을까? 아니면 타성에 젖어 있다 어느 한순간 사라졌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매달렸다. 영어 잘하는 직원을 채용하고, 자문 변호사도 위촉했다. 다른 나라의 농산물 관련 규정을 꼼꼼히 검토했다. 그리고 직원들 대부분은 현장으로 나갔다.

‘품질은 현장에 나서부터다. 좋은 종자를 심어 좋은 품질을 만들자. 모두 농사꾼이 되어라.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말자.’

미심쩍은 부분이 조금만 있어도, 물증이 아니라 심증만으로도 가차 없이 빨간 도장을 찍었다. 비싸게 사들인 작물이 폐기되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행위를 어느 직원이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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