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것 없어

15. 체념과 공포

by 재학

창순은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죽창을 든 이들이 횃불 아래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서지 못하고 허물어진다. 옆구리에 발길질이 이어진다. 어둠 속에 정확히 몇 명인지 가늠할 수 없다. 10여 명은 넘어 보인다.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 누구 하나 말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오직 죽창 든 사람들만 떠들고 있다. 대체 저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저럴까? 묶여 있는 이들이 기둥에 세워진다.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일어선다.

기둥에 묶인 사람에게 달려가 엎어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한동안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주저앉는다. 여자다. 곧이어 죽창들의 고함소리와 발길질이 여자에게 쏟아진다. 여자는 나동그라지고 그것을 지켜보며 어느 누구도 꿈쩍하지 않는다. 여자의 행동이 그들을 자극했나 보다. 죽창 몇 개가 순식간에 젊은이의 몸에 꽂힌다. 젊은이의 입이 벌어진다. 뭐라고 말하나 소리가 없다. 창순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다리가 꺾인다. 창순의 목으로 꺽꺽거리는 소리가 걸린다. 얼마나 철천지원수이길래 저렇게 잔인할 수 있나?


눈앞의 일이 꿈이기를 바랐다.

터질 듯이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누르며 고개를 들었다. 들키면 안 된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극도의 공포가 마을 공터를 감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저앉은 사람들은 반항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흐느낌도 없다. 그럴수록 죽창들은 흥분하여 날뛴다. 얼마간의 난동이 지나가고 줄에 묶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 횃불이 앞장서 산으로 향한다. 소리 없는 그림자 행렬이 공터를 빠져나간다. 남은 사람들은 미동 없이 앉아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횃불이 사라진 공터는 어둠이 짙게 남았다. 창순은 가슴이 진정됨을 느꼈다. 공터로 나갔다. 창순이 다가가도 사람들은 움직일 줄 몰랐다. 어둠보다 깊은 공포가 그들을 옭아매고 있다. 체념과 공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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