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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남긴 사람들

7. 기무라 아키노리

by S 재학

사과가 가르쳐 준 것

(기무라 아키노리/최성현 옮김. 김영사. 2010)


이 책을 읽으면서 든 가장 큰 감정은 치열함이다.

나름 인생의 일정 부분을 치열하게 살아 냈다고 자부했건만.

조금 부끄러웠다.


무엇이 치열했나.


주인공은 썩지 않는 사과 재배를 꿈꾼다.

과수원에 농약을 뿌리고 들어오는 날, 옻이 오른 것처럼,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붓고, 며칠 바깥 나들이를 못할 정도로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며,

‘농약을 줄이면 우리 가족 모두 즐겁게 일할 수 있다. 어떻게든 농약을 줄여보자.

라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가 처음부터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시에 나가 회사원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돌아간다. 1년 반만의 귀향이다. 스물두 살에, 중학교를 함께 다닌 아내를 만나고, 결혼 후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든다.

이후 ’자연재배‘ 농법을 시작한다.


자연재배란 농약도, 비료도 주지 않고 작물을 키우는 것이다.

땅의 힘을 길러, 강한 땅에서 좋은 결실을 얻는 것, 작물도 사람도 이익인 농법이다.

사과에 먼저 적용하고 이후 벼, 야채 등 다른 작물로 확산시켰다.


기무라는 자연재배 농법을 시작해서 고난의 10년을 보낸다.

그동안 사과 한 알 수확을 못한다.

그래도 포기 하지 않는다.

마을에서는 따돌림이, 가정에서는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아궁이에 불 꺼뜨린 놈’


이 말은 일본 아오모리 방언으로, 바보보다 더 나쁜, 감당이 안되는, 어찌해 볼 길이 없는 사람을 이르는 말로 매도의 대상이다. 친구들 발길도, 관혼상제 안내도 끊긴다.


가정은 더 어려워서 딸 셋의 수업료도 못낼 지경에다 지우개 하나를 셋으로 잘라서 쓰기도 한다.

힘들 때 가족만큼 의지가 되는 존재도 없다.

기무라도 그랬다.


‘나와 언제든지 헤어져도 좋다. 나 같은 사람과 살아서는 행복하기 어려우니 재혼해서 다시 시작하라’

고 아내에게 말한다. 그렇게 할 아내가 아니다.


‘올해도 안되면 그만두겠다.’

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딸이 말한다.

‘그럼 지금까지 우린 뭘 한 거예요? 그러면 그동안의 일들이 모두 헛고생이 되잖아요.’

라며 따지듯 묻는다.


‘네가 믿는 길을 가라. 그러면 된다. 가난해도 좋으니 길가의 돌과 같이 살아라.’

고 한 어머니의 말은 금과옥조라고 표현했다.


‘나는 숱한 실패를 통해 답을 얻었다. 실패하지 않았다면 답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고, 남보다 더 많이 실패했기에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바보라서 결국 그 고개를 넘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그뿐이다.’


아리요시 사와코의 소설에 나오는 글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바보 맞다.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 실패와 실패를 거듭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것, 그는 위대한 농부다.

이 농부는 말한다.

‘해충을 없애기 위해 농약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농약을 뿌리므로 해충이 생긴다. 해충이 인간이 먹어야 할 농약을 대신 먹는다.’


농부가 쓴 영농일지다.

영농일기다.


이 책은 일기 형식이 아니다.

읽다 보니 일기였다.

기무라가 자연재배 농법을 하면서 이렇게 썼어도 전혀 이상 할 것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일기다.


1972. 9. 19.

이와키 중앙공민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9○○. ○. ○.

초등학교 6학년 맏딸이 ‘아버지의 일’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작문했다.

‘우리 아버지는 사과를 키운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기른 사과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19○○. ○. ○.

봄부터 풀을 베지 않아 풀이 사람 옆구리까지 크게 자랐다. 콩을 심은 과수원에 수많은 종류의 풀이 났고, 그 속에서 콩도 건강하게 자라 마치 정글처럼 활기찬 모습이었다.


19○○. ○. ○.

만약 논이 없어진다면 내린 비는 갈 곳이 없어진다. 요컨대 논은 자연의 댐이다.


2○○○. ○. ○.

나는 결혼 전 회사에서 일할 때, 원가계산 등 경영 효율화를 목표로 일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농업이란 비효율적인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는 불가사의한 세계이다.


2○○○. ○. ○.

이구치 씨에게 이런 일도 있었다. 반으로 자른 우리 집 사과를 냉장고 위에 두고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사과는 이태 뒤에나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그때까지 썩지 않은 상태였다. 썩지 않고 바싹 마른 채로 여전히 과일 향을 풍기는 것에 놀라 이구치 씨는 그것을 ‘기적의 사과’라 불렀다.


2○○○. ○. ○.

고정관념을 버려라. 나는 농사를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머리는 텅 비우는 것이 좋다.


2○○○. ○. ○.

나는 작물 또한 인간과 같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많다. 토마토는 토마토 언어로, 오이는 오이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만 우리 인간이 그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훌륭한 일기다.

(초등학생들은 관찰일기를 이렇게 써도 좋을 것이다.)


-2006년 TV도쿄, 세계를 움직인 100명의 일본인 선정

-대기업 총수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인물

-1년 전 예약이 마감되는 기적의 사과 재배

-일본 서점가 베스트 셀러 저자

-일본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까지 연 100회 이상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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