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최선을 다해 살아낸 적이 있다.
공무원 시험 준비는 시립도서관에서 했다. 일을 마치면 곧바로 도서관을 갔다. 입장료가 100원이었다. 동네 형이 도서관 직원으로 있었다. 형이 매표소에 앉아 있을 때는 그냥 통과했다. 형이 보이지 않는 날은 어쩔 수 없이 그냥 돌아와 자취방에서 공부를 했다. 100원이 아쉬운 나날이었다. 추석 때까지였으니 한 달 정도 그렇게 했나 보다. 이번에는 조금 떳떳하게 고향을 찾았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잖아. 동생들은 오빠의 귀향이 반가운 표정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기수는 면사무소에 근무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동네 친구들은 만나지 않았다. 보름달을 보며 건너 마을 친구에게 갔다. 건너 방에서 친구 어머니가 내어 온 햇밤과 고구마를 먹으며 장래 일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목회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중학교 졸업인 학력을 올리는 것이 먼저이며 나도 너처럼 공부를 해야겠다고 말했다. 깊은 밤 하천 둑을 따라 걸으며 공무원 시험공부가 맞는지 생각이 많아졌다.
추석이라고 아침에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많은 반찬이 있다는 것만 다를 뿐, 바로 들로 나갔다. 어린 동생들도 가을걷이에 나섰다. 모처럼 가족이 함께 하니 좋다. 막내를 그 위 누나가 업고 집으로 오는 길에 어머니가 그러셨다.
“대학을 가거라.”
“…”
“너 하나 대학 못 보낼 것 같냐.”
인생에 최선을 다 한 적이 있었냐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최선을 다해 살아낸 적이 있다.’
대학시험이 두 달 조금 남았다. 수석가게를 그만 두었다. 입시학원에 등록했다. 처음 보는 과목이 수두룩했다. 먹는 시간도 아까웠다. 시간을 아끼려 씻는 시간도 줄였다. 하루 2시간 이상 자면 볼을 꼬집으며 반성을 했다. 갈수록 핼쓱해지는 얼굴이 좋았다. 학력고사 첫해, 지방 국립대에 합격했다.
어머니, 아버지의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