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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Jul 26. 2023

일기를

9. 심사부 일기

‘자연이란 말이지…거미는 벌레를 잡아 먹고, 큰 물고기는 작은 물고기를 잡아 먹고, 식물이 식물을 잡아 먹고, 동물이…내 관점에서 자연이란 그저 거대한 식당이라고’

(우디 앨런 작 사랑과 죽음 1975 영화 나풀레옹 전쟁기 중)     



'인생이란 말이지…어제 일을 잊어 버리고, 지난 달 일도 잊어 버리고, 그래서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거라고.'     


-심사부 일기 1975~2023     


-○○다이어리를 만나기 전에는 ‘공책’에, 다이어리를 만나고부터는 1년에 한 권씩 만들어 냈다.     



1.그의 일기는 자세하다.


어린 시절 고향마을, 친구들과 책보자기 매고 걷던 길, 겨울이면 썰매 타던 골목이 담겨 있다. 

논둑길을 달리고, 하훈이누(개 이름이다.)와 얕은 산 꿩을 쫓던 일, 외양간 송아지도 있다.      


꿈을 찾아 날고 싶은 사춘기 소년이 있고, 초가지붕이 스레이트로 바뀌어 가는 농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오리길 자전거로 중학교를 다녔고, 산업화 일꾼을 실어 나르던 완행열차 상경행렬에 동참했다.  

   

주경야독의 시기를 거쳐, 직장과 가정을 이루었어도 상승 욕구를 놓지 못하고 몸부림치던 청춘의 꿈이 담겨 있다.     

실수와 오류 투성이의 육아는 힘들었다.

전통시대 남성, 장남, 형과 가장의 의무는 당연한 삶의 여정이었다.     

시간이 흐른 후‘아낌없이 주는 나무’,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보인다.       


   

2. 시시콜콜 모든 것을 기록했다.


신작로 밭 고구마와 월굿제 밭 고구마 때깔이 다름을, 외할머니가 오실 때마다 재봉틀이 생기고, 살림이 늘어 나는 것을 보았다.      

자취하던 시절 생고등어 한 마리가 작은 것 150원, 조금 큰 것은 200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가정을 이루고, 육아를 하면서, ‘괜찮은 잠바를 샀다. 8만원’이었음을 알 수 있고, 아파트 마련에 들어갈 예산을 꼼꼼히 적어 나갔다.     

직장 스트레스로 담배를 몇 개피 피워서 목 상태가 어떻다고 했다.


가족, 형제, 직장 동료 사이의 관계가 들어가 있고, 

운동을 해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컨디션을 찾았다는 기록도 빠짐없이 나온다.     


선거 때면 후보의 공약이 좋고 나쁨을,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태풍 등 뉴스거리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3. 자신만의 동굴이다.


우리는 각자의 동굴을 만들어 산다. 동굴은 괴로움으로부터 도피처가 되기도, 행복을 저장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그의 일기는 훌륭한 동굴이다.     


사춘기 시절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고 가출을 꿈꾸던 강정둥 언덕, 친구가 전부인 시절, 시샘과 우정의 간극 속에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웅크리고 새살이 돋아 나도록 기다리던 곳, 마음의 지향을 이루어 하늘을 날 듯 한 기분도 저장했다.


첫째가 태어나고, 둘째가 태어나 경쟁하듯 자라는 모습을 빠짐없이 사진과 일기로 담았으며, 두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고, 직장을 갖고 가정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행복으로 저장했다.     



4.삶의 지침이 되었다.


그의 일기는 꾸준하다.

1975년부터 하루의 빠짐도 없다.

‘술로 떡’이 되지 않는 한 일기를 쓰고 잤다.

여행 길에도 메모장을 챙겼다.      

몇 번의 경험으로 어제의 감정이 오늘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기억을 되살려 쓰는 글은, 생동감부터 다르다.      

고칠 수 없는(?) 습관으로 굳어진 지금은 오전에 어제 일기를 쓸 수 있다.     


5년 10년 20년 전 일기를 읽으며,

지금도 얼굴이 붉어지는 부끄러움을 다시 할 자신이 없다.

‘다시는 그러지 않아야지.’

라고 한 번 두 번 반복하다 보면 ‘그러지 않게’ 된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지침으로 삼았다. 


지나간 일기 수시로 읽으며 반성과 성숙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가 만일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세월의 흔적이 수 많은 후회와 연민으로 점철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도 자책의 시간이 더 많고,

만족보다 그렇지 않은 삶이었다고, 

행복은 무지개 너머에 있다고 읊조리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5.또 다른 메모장을 만들었다.


그는 메모광에 스크랩광이다.      


시대별로 주제를 달리해서 모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필요에 의해 하다 보니 주제가 분류되었다.     


20대에는 상승과, 진학으로 대학원, 육아 관련이 많고, 

30대에는 경제, 특히 아파트 분양기사를 많이 모았다. 

40대에는 건강, 취미,

50대에는 전원생활과 여행,

60대에는 다양한 학문적 관심거리를 모았다.     

격언, 명언, 종교, 역사 관련 기사와 글은 시기를 막론하고 꾸준히 모았다. 


일기와 함께 메모장 1권, 스크랩 1권이 매 해 만들어 졌다.

거기에 더하여 두 아들이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과제로 한 그림, 숙제장, 일기, 어버이날 받은 편지 모아 두었다.     


이쯤 되면 컬렉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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