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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pinion 수필

언어는

여유

by S 재학

“실수를 만회하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당신은 용기를 냈네요. 그냥 서로 잊고 넘어 가죠?”

“좋아”

“됐네요.”

‘악수’

아야즈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른체 했다고 리크가 고백한다.

잠시 생각한 아야즈가 리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 오는 토요일, 오늘은 맛있는 것 먹으며 휴일을 보내자.

동네 중국음식 맛집이 있다. 옛날 볶음밥, 기름 잔뜩 들어간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더욱.

그리고 오후에는 영화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가 나오려면 집이 최고다.


넷플릭스.

요즘 특별히 찾아 보는 건 없다.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평단의 찬사를 받는 시리즈-000님이 시청 중인-가볍게 부담 없이-오늘 밤 몰아보기-긴장감 넘치는-…


리모콘이 한가로이 움직이다 찾은 것이 INTO THE NIGHT 어둠 속으로.


설정이 단순하다.

태양 빛이 모든 생명체를 앗아 간다.

좌석의 대부분을 채우지 못하고 강제로 이륙한 비행기는 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서쪽으로 날아가야 한다. 부조종사 역할은 전직 여군인 헬리콥터 조종사가, 간병인 경력이 전부인 사람이 의사 대행을 한다. 열 두명의 인원은 네 편이 되었다 내 편이 되었다 하면서 사랑과 죽음, 배신과 협력이 난무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태양 대신에, 전쟁, 자연재해, 경제 상황, 직업, 가족, 무엇을 대입해도 될 것 같다.

인간을 불안하게, 쫓기듯, 시기질투하게 만드는 것은 모든 것이 해당한다.


그렇다면, 저 상황이 온다면 나는 누구처럼 행동 할까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그러다 6회인가에서 저 대사가 나온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극도의 분노, 배신, 불신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라서 가능한 건가? 아야즈니까 그렇게 표현하게 했나?


그러다 문득,

예전부터 느낀 것인데,

이건 언어 차이에서 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차원적으로, 원색적으로 뱉어 낼 수 있는 것을 저렇게 표현하게 하는 문법 구조나 어순 배열, 또는 낱말 구성 등.


‘우린 어둠 속에서 넘어지며 살아요. 갑자기 불이 켜지면 탓할 것들이 너무 많아 보이죠.’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편집장 베런은 이렇게 말한다.


일상이 흩뜨러지고,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군가를 탓해야 하고, 희생양을 찾고, 본질을 애써 외면하려 들 때, 우리는 무어라고 말하는가?

‘네 탓이야.’

‘너 때문이야’

라고 소리치지 않나?

그런데 베런은 이렇게 말했다.

베런이라서?

영화라서?





우리도 그랬다.

잊었는지 모르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김소월은 가슴이 찢어지게 설웁고 아픈 이별을 ‘진달래 꽃’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 본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중 일부다.

난 이 시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나 외로워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저렇게 많은 별 중 하나를 쳐다 본다고 말한다.


어순, 문법의 차이가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뭘까?


혹시?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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