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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pinion 수필

좀 있어 보이는 말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

by S 재학

본의 아니게, 조금은 ‘자연인(?)’생활을 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75km는 출퇴근에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거리다. 5:00에 출발하면 1시간, 6:30에 나서면 1시간 40분 걸린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날 수는 있다. 대신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평일 술자리는 엄두도 낼 수 없다. 1주일을 단조로이 보낼 수 있어 좋다. 평일을 만회하려 토, 일요일을 신나게 보낼 것이다.


젊었을 때는 가능했다.

이제는 힘들다.

리듬이 조금만 깨져도 하루가 힘들다.

그래서 즐거운 드라이빙을 포기하기로 했다. 다행히 괜찮은 사택이 있다. 들어 갔다.

1시간 40분이 1분으로 단축되었다.


모두 돌아간 교정은 적막이 찾아 온다.

오래된 시골 학교가 그렇듯, 우람한 나무가 울창한 숲처럼 자라 있다.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자동차 소리, 흔한 개 짓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밤이 온다.


무언가 아주 많이 주어진다면,

로또가 당첨되어 수십억 원이 생기거나, 생일 선물이 잔뜩 들어 왔다거나 할 때.

시간이 아주 많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이 올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 약간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다.


허리가 아프도록 누워 있는 것?

사흘이면 질린다.

텔레비전? 며칠 지나면 볼 게 없다.

결국 생산적인 일을 찾게 된다.


운동장을 맨발로 걸었다.

두툼한 양말과 운동화에 길들여진 발바닥이 적응하는데 이틀 걸렸다.

가까운 골프 연습장에서 1시간 운동.

그러고 들어와도 7:00.

출퇴근을 한다면 아직도 도로에 있을 시간이다.


책을 찾게 되었다.

고마운 습관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게 된다.

잡힌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이다.


“하지만 젊을 때 그런 외롭고 혹독한 시기를 경험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넌 그렇게 생각해?”

“나무가 늠름하게 자라나려면 혹독한 겨울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항상 따뜻하고 온화한 기후에선 나이테도 안 생기겠지.”


이 책 예전에도 읽었다.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대목이 와 닿는다.

그것 뿐이 아니다.


“알아. 그건 나도 잘 알지.”

기타루는 말했다.

“그런데 알기만 해서야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야, 네 말에 네가 딴죽 좀 걸지 마.”

나는 말했다.


이런 말투 많이 들었는데.

물론 우리 정서는 아니다. 우리는 이런 말투로 하는 사람 드물거나, 이렇게 말하면 저런 식으로 대꾸하지 않는다.


꽂힌 대목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가만있었다.

좀 있어 보이는 말을 너무 자주 하는 것도 내가 가진 문제점 중 하나다.’


난데.

내가 그러는데.


“그 꿈 얘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왜 그런지 똑똑하게 기억이 나.”

“남의 꿈 얘기가?”
“꿈이라는 건 필요에 따라 빌리고 빌려 줄 수 있는 거야. 분명히.”

나는 말했다.


‘정말 나는 좀 있어 보이는 말을 너무 자주 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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