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옵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
‘어느 날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다.’가 아니라 이름이 바뀌었더군요.
제 이름은 부모님이 성의를 다 해 지어 주셨습니다. 청송 심가 25대 손으로 돌림자 써서 작명가에게 부탁을 하고 아버지가 지으신 이름과 일치해서 이거다 하셨다지요. 하지만 집안 어른들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고 하네요. 어렸을 때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좋다 해서 뒷글자를 살짝 바꾸어 불렀습니다. 돌아가신 큰고모가 뒷글자 다른 이름을 부르시는 것을 그냥 발음이나, 고모의 습관(학교를 핵교 하는 것처럼)으로 생각하고 대답하곤 했지요. 그 이름 한 때는(초등학교 때) 제 맘대로 한자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 아는 한자가 그것밖에 없었어요. 나중에 틀린 것을 알고 부끄럽기도 하고, 어린 시절 일기에 오기된 것을 어떻게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아무려면 어떻나요?
다시 제자리를 찾은걸요.
그 이름이 중년을 넘어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리처드 기어
맞습니다.
올해 70대 중반인 미국 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귀여운 여인에서 열연한, 주제곡 프리티 우먼도 아시죠?
그 기어입니다.
와이프가 연수를 갔었습니다.
같은 지역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가서 연수 끝나고 자유 시간이면 연수원 산책을 하며 수다를 떨었나 봐요. 그러다 내기를 합니다.
여러 가지 내기가 있었다고 하네요.
뭐 그런 것 있잖아요.
카톡 보냈는데 누구 신랑이 가장 빨리 대답하나,
사랑해라고 보냈는데 어떤 답장이 오나 하는 것.
저는 뭔가 쌓이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당연히 제 답장이 1등이었고,
기세 등등 한 와이프는 본의 아니게 신랑 자랑(?)을 하게 됩니다.
누구를 닮았고,
닮은 것을 묘사하려다 보니... 리처드 기어를 가장 닮았다나…
그 리처드?
맞아?
머뭇거리는 와이프에게
누군가 그 사람이 그 사람 기여 아녀? 했다나?
엉겁결에 기여
라고 한 순간 리처드 기어가 탄생합니다.
덕분에 리처드가 되었고,
어느 모임에서 와이프 후배가 저를 보고 리처드 옵바 한 것이 순식간에 퍼져
(그때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표정, 그때의 어색함이란 ㅠㅠ)
리처드 오빠가 되었습니다.
이름을 만 번 불러 주면 기가 트인다는 말 있잖아요.
리처드라고 오천번은 불렸을 겁니다.
이제 브런치에서 나머지 오천번을 불려야겠습니다.
리처드 기어와 제가 닮은 부분은 딱 하나입니다. 흰머리!
(프로필 편집을 하는 변명을 이렇게 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