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되 가는 것들
1. 노인 일자리로 할머니 몇 분이 오신다.
주 3일, 하루 2시간 급식실 지원, 청소, 때로는 잡초 제거를 하신다.
규칙적으로 출근할 곳이 있고, 기다리는 일이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자 활력이다.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오히려 몇십 분 일찍, 언제나 활기차게 들어오신다.
‘빨간 쉐타가 이뻐요.’
‘쉬어가면서 하세요.’
‘저번에 초코(할머니 강아지) 아프다더니 지금은 밥 잘 먹나요?’
만나면 먼저 인사를 드린다.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 햇살은 맑은데 바람이 차다.
할머니 한 분이 다른 날보다 일찍 오셨다.
‘오늘은 빨리 오셨네요?’
‘이따 일이 있어 미리 하고 들어가려고.’
‘커피 드셨어요?’
‘한 잔 주세요.’
커피 향과 창문 너머 햇살이 할머니의 마음을 흔들었나 보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장가갈 생각을 않는 아들, 환갑도 되기 전에 하늘 나라로 도망간 할아버지, 딸 대신 외손녀 키운 사연, 그 손녀가 지금은 대학을 졸업해서 할머니밖에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시다 우리 손녀 사진 여기 있어요 한다.
‘예? 손녀가 몇 살인데요?’
‘스물 다섯.’
그러면서 복도로 끌고 나간다.
오래된 환경 구성판에, 아주 옛날 행사 사진 중에 똘똘하게 생긴 아이를 가리킨다.
‘3학년 때 예요.’
아~
그 할머니 오실 때 마다 그 복도로 오신 이유를 알았다.
낡고 오래된 것 보기 싫다고 갈아 엎었더라면...
2. 역사가 오래된 곳 답게 유산이 많다.
현황 파악도 되기 전에 한 건이 올라왔다.
동상 철거.
사유-붕괴 위험 있음.
붕괴? 그럼 철거해야지. 왜 이때까지 놔뒀어?
클릭하려는 순간, 과학으로 설명이 안되는, 육감이 작동한다.
그거 결재하면 안돼.
이 느낌 뭐지?
일단 기다려 보세요.
나가 살펴봤다.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출입금지 테이프로 둘러 놨는데 여기저기 시멘트가 떨어져 나갔다.
옛 어투, 아시아를 아세아 하는 것처럼, 오래된 것 맞다. 옆구리에 1980년 기증자 ○○○
돌아서 내려 오는데 요즘 보기 드문 까까머리 2학년 아이가 달려오다 인사를 한다.
‘저거 우리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셨다고 아빠가 그랬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마터면 감당키 어려운 상황을 만들 뻔 했다.
3. 정문 입구에 돌 비석이 비스듬히 넘어가기 직전으로 쳐 박혀 있다.
‘1941년… ○○○…발전을 위하여…그 공덕을 길이...하기 위하여...’
1만 평에 육박하는 부지다. 전부 다였는지 일정 부분 기증인지 탁본을 뜨고, 기록을 찾아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일이다. 이런 공덕을 방치하다니. 살려야겠다. 공사 업체에 견적을 받았다.
업체 사장이 와 이리 저리 살펴보더니 얼굴색이 변한다.
‘우리 집안인데요.’
직계 선조는 아니지만 워낙 희성이라 집안이면 거의 통한단다.
볼 것도 없다. 바로 계약이다.
‘잘해 주세요.’
낡고 오래된 것을 못견뎌 한다.
단지 보기 싫기 때문이란다.
나 오래 되 가는데...(어쩌면 이미 되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