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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Apr 16. 2024

막연한 분노는 수치로 끝난다.

큰소리 치는 자 그가 바로 범인이다.!!

인간은 어디까지 본 모습일까?

얼마만큼 까발려야 제 모습을 보일까?

     

시골로 발령 난 덕분에 5촌 2도 생활을 한다.

금요일은 밀린 빨래(주로 다림질할 것), 빈 반찬통 잔뜩 싸 들고 달려 간다. 초기에는 고장 특산물(복숭아, 고구마, 사과, 대파 등등)을 사 가 여기저기 나눠 주기도 했다. 오늘은 겨울옷 드라이클리닝 맡길 것이 많다. 언제나처럼 4:30 출발, 여전하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고개 먼저 들이 민다. 아 배고파,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아니 뭐 해 놨을까? 예전엔 주문도 막 했는데...

          

햇볕을 안고 가니 얼굴이 잔뜩 달아 올랐다.

2:30 걸렸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언제나처럼 우편함을 살피는데...뭔가 이상하다.

우리 집 우편함 작지 않다. 우편물이 넘치는 경우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다. 주간신문 한 부, 동네 의원에서 보낸 우편물 하나, 은행 우편물 하나가 전부인데 밖으로 삐져 나오려 한다. 그러려니 하며 우편물을 집어 드는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쓰레기가 잔뜩 들어있다.

그냥 쓰레기가 아니다. 주차장 바닥을 쓸어 부었다. 오래된 낙엽. 나뭇가지, 폐비닐 조각...

          

사람에 따라 분노하는 지점이 다르다.

난 나에 대한 도전에 민감하다. 감정적 도전에 민감하다. ‘나의 것’에 쓰레기를 부은 것은 내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내 감정을 건드렸다. 도전이다.!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얼굴이 확 달아 오를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너 이제 죽었어.’(너 이○○라고 했다.)

 ‘잡히기만 해 봐라.’

 ‘그래, 너 잘 걸렸어.’

중얼거리며 증거를 채집했다. 바닥에 펼쳐 놓으니 양이 더 많다.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투명 비닐에 담아 잘 보이게(들켰음을 알고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아니면 최소한 양심이라도 아프게) 걸어 놨다.     

떠오른 인간이 있다.

새 만도 고양이 만도 못한, 니가 도전을 해와? 어이가 없네. 인상은 과학이라더니...


       

저녁 맛있게 먹는 것은 이미 날아갔다.

먹는 둥 마는 둥 cctv 확인에 들어갔다.

우리가 언제 집을 비웠지? 사전 투표하고 선거 전날 저녁에 놀러 갔으니 9~10일을 중점적으로 보자. 아냐. 충분히 1주일 분량을 살펴보자.

주차장을 비추는 카메라부터 확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우편함은 사각지대다. 벽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접근하면 카메라에 안 잡힌다.!!

포기할 내가 아니다.

작은 조짐 하나 놓치지 말자. 2배속으로 돌렸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 고개, 어깨가 아프다. 스마트폰 화면이라 눈도 아프다. 왠만하면 나올 만 한데, 특정할 수가 없다. 그놈이 아닌가? 작은 범법행위는 몇 개 잡아냈다. 주차장 근처에 접근은 했다. 하지만 그는 아니다.     

이제 서서히 다른 누군가를 의심해야 한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분노도 김이 빠져 간다.

찰나의 순간에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다 바람처럼 사라진다.

이럴 때는 어거지를 부려야 한다.     

옆집 민사장이 그랬을까?

왜?

우리 집 나뭇잎이 그 집 쪽으로 떨어진다고, 지난번 그것 때문에 말 한 적 있잖아.

설마? 그럴 사람 아냐.

아냐, 사람은 모르는 거야.

2층 연미 엄마일까?

연미 엄마가 왜?

계단 청소 안한다고?

시간 날 때마다 쓸고 닦고 했는데...하긴 청소 한 지 좀 오래 되었어.

3층 구슬이 엄마가 했을 수도 있어.

구슬이 엄마는 아니다.!

사람은 모르는거라니까?

만약 연미 엄마나 구슬이 엄마라고 밝혀지면 어떻게 해?

글쎄...

모른척 해야 하지 않을까?

대체 왜 그랬을까?

그러게 말야. 옆 집 고놈인 줄 알았는데 걔는 아니네.

다행인가?

혹시, 혹시 새 아닐까? 언젠가 주차장 청소를 하는데 깃털이 많이 흩어져 있었어.

새가 거길 왜 들어가?

고양이는?

          

그렇게 분노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신문을 가지러 나가면서 우편함을 살펴봤다.

어? 또 넣어 놨어?

나하고 싸우자는 거야?

아니? 빼 놓은 것 만큼 그대로 쌓여 있네?

어제 저녁에 치웠는데, 또 들어가 있어???

간댕이가 부었지.

.

.

.

아냐.

아냐.

이건 ...사람이 그런 것 아냐...     

어제 밤 눈이 빠져라 돌려 본 cctv에 몇 번인가 작은 새가 우편함 쪽에서 날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아~

새다.

새가 그랬다.


     

서둘러 집 앞 마트를 갔다.

작은 바구니를 샀다.

우편함 대용이다.

바구니를 매다는데 작은 새 두 마리가 공격적으로 스쳐 난다.

그래, 알았어 하마터면 너 때문에 부끄러운 분노 할 뻔 했잖아.


새만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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