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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Jun 17. 2024

그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매뉴얼 인간

1. 출근길에 만난 모연씨

     

 AM 7:58

광고가 나오는 시간이다.

이런 광고는 소음이다. 차라리 잠깐의 고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금부터는 우합류 구간. 앞차에 바짝 붙지 않으면 어느 순간 오른쪽에서 연속 두 차선을 끼어드는 얌체가 있다. 미울 때도 있고 너그러이 이해되는 날도 있다. 그렇게 엉킨 자동차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11km 구간을 함께 간다. 쌩하고 앞질러 간 차가 좌회전 차량에 밀려 1차선에 서 있을 때면 고소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가능한 사이좋게 가야 한다. 대부분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오늘도 그랬으면 좋겠다.

     

바쁜 아침 시간 1차선 정속 주행하는 차 꼭 있다. 아무리 60km 구간이라고 그 속도로 가고 있어? 이런 차 눈총 1위다. 추월은 하지만 차도 몸짓이 있다. 온몸으로 분노를 발산하며 추월해 간다. 느껴진다. 알 수 있다.


   

계기판 시계가 8:00를 알리면 라디오를 켠다. (소음 때문에 2분 동안 껐다.)

우주선 통신 신호 같은 시그널 음악이 나오고 ‘읽어 주는~’ 멘트가 나온다. 책이나 영화, 때로는 유명인, 청취자가 보낸 말을 읽어 준다. 가슴에 착 달라붙을 때가 있어, 이 멘트 듣고 다른 채널을 찾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하는 행동이다.

     

잠깐 상념에 빠진다.


지난주 행사는 만족도가 높았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준비한 만큼 된다. 

잘 되겠지. 

작년에도 이렇게 했잖아.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냐?

이런 생각 하면 안된다. 조금 더 닦달(?)하고, 확인하고, 챙겨보면 되는 거다.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이다. 이럴 때 끼어드는 차는 용서가 된다. 그런 생각으로 앞차에 바짝 붙지 못했나 보다. 조금 벌어진 틈으로 뒤 2차선에 있던 검정 K7이 어느 순간 앞으로 들어와 버린다. 냉큼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진한 선팅 덕분에 운전자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 고맙다. 하지만 절로 욕이 나온다.

얍삽한 놈.

운전을 저렇게 하고 싶을까?

고놈 참~

     

새치기든 위협이든 하고 나면 가해(?) 운전자도 상대방의 표정을 살핀다.

미안해서도 그렇고 보복의 위협을 걱정해서 그럴까? 어디까지나 그럴 것이다는 생각이다. 선팅 너머로 들여다 보고, 번호판 볼 것이다. 디자이너의 작품일까? 구조적인 문제일까?

자동차에서 먼저 보이고, 잘 들어오는 것이 자동차 번호판이다.

신기하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것.

방금도 앞차에 얍삽한 ××하면서 자동으로 번호판에 눈이 갔다. (그 차도 내 번호판 봤을 것이다.)


어?

눈에 익다. 

어디서 봤을까?

같은 주차장? 동네? 체육센터? 분명 낯이 익다. 그 순간 라디오에서 멘트가 흘러나온다.      



‘길을 가다 돌을 만나면 약자는 걸림돌이라 말하고 강자는 디딤돌이라고 말한다.’     

토마스 칼라일이 한 말이라고, 청취자가 좋아하는 말이라고 보낸 것을, 진행자가 읽어 준다.

      

내가 만난 돌들, 나는 걸림돌이라 했을까? 디딤돌이라고 했을까? 나는 강자였을까? 약자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신호등에 멈추는데... 그 번호가 앞에 있다. 눈에 익은 번호판이 서 있다.     


저 차를 어디서 봤을까 생각이 끝나기 전에 신호가 녹색으로 바뀐다. 1차선 차가 굼뜬 것도 아닌데 그 차, 2차선으로 칼치기를 한다. 잽싸다. 아니 자동차가 온 몸으로 분노를 뿜어 내고 있다.


          

2. 매뉴얼 인간

     

저 차 나한테만 그런 것 아니었네?

      

분노가 사라지고 다시 라디오 소리가 들어온다.

방송도 8시 넘으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음악도 시큰둥. 이제 15분 남았다. 조용히 가자. 라디오를 끈다.

내리막 앞에 줄줄이 달려가는 차들이 보인다. 흰색, 검정색, 어쩌다 회색...

대부분 고개를 넘어온 순서다. 그런데...유난히 1.2차선을 왔다 갔다 하는, K7이 있다. 이 길 다닌 2년 동안, 저렇게 달려도 모두 삼거리에서 만나는데.      

신호 두 번 남았다. 삼거리 정체만 이겨내면 제 시간에 도착이다. 오늘도 그럴 것 같다.

앞 트럭이 미처 통과하지 못하고 멈추었다.

이런 짬 이용하여 스마트폰 만지작거리고 룸미러로 얼굴 살펴본다. 그렇게 두리번거리는데 옆 차선 뒤에 그 번호가 있다. 내리막에서 칼치기했는데 나보다 뒤에 있다.

그 번호판이...


     

혹시 주차장???

그렇다 주차장에서 봤다. 같은 색상 차종이 여러 대 있어서 선명하게 입력하지 못했지만, 우리 주차장에 오는 차다.     

이미 그 차도 나의 존재를 의식함이 역력하다. 차가 느낀다. 여기서부터는 5분 거리, 천천히 가자. 주차장에서 만나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

신호가 바뀌고 트럭 덕분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것이 고맙다. 그 번호? 진즉 사라졌다. 굉음을 내면서 사라져갔다.     

유턴 받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구간이다.          

그 번호... 유턴 구간에 서 있다.

그리고 유턴. 그 번호가 주차장에 올라서고 나도 따라 들어섰다. 주차 라인에 나란히 대고 서로 누가 먼저 내릴 것을 계산했냐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처럼 주차하고, 가방 챙기고 옷 손에 걸치고 내렸다. 그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다. 자기가 한 행동을 알고 있음이 역력한 (뒷)표정으로.


          

그의 별명은 매뉴얼이다.

임 매뉴얼.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상상도 못 한다. 어느 누구도 그의 매뉴얼엔 꼼짝 못 한다. 그는 60km 구간은 60km로 달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녹색 신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세상에 가장 미운 사람이 이러저리 차선 바꾸는 사람이라고 했던 적도 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매뉴얼님이었다.


     

그의 분노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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