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기수
우리 인생은 대부분 복기가 가능하다. 지나온 궤적을 되짚어 보면 이해되는 부분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너무 늦은 깨달음으로 후회하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어떤 일은 수십 번을 되돌려 봐도 이해되지 않는다. 내 의지로 만든 일이 아니면 그렇다. 기수의 열여덟 어느 시기도 그렇다.
버스가 떠나고 셋은 정류장을 벗어났다. 춘호가 앞장섰다. 여느 때와 달리 춘호 표정이 어둡다. 기수와 대근은 아무 소리 못 하고 춘호 뒤를 따라갔다. 오일장 골목으로 들어서고 몇 번 인가 두리번거리더니 어느 집으로 들어간다. 마당에서 주인과 뭐라고 하는 것 같더니 밖에 있는 기수와 대근이에게 손짓했다. 주막인데 숙박도 한단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는 입구에 붓글씨로 여인숙이라고 쓰여 있었다. 시골 여인숙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들어서니 맨 끝방을 가리킨다. 지금 생각해 봐도 춘호는 대단한 친구였다. 열여덟, 이제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어른을 상대하고, 협상하고, 친구들을 이끌었다. 주눅 든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셋은 그렇게 지방 개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다음날부터 인근 마을을 돌아다녔다. 학습지 개척이 잘되었더라면 기수의 추억은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70년대 농촌 마을은 학습지에 대한 이해와 필요성도, 예습과 복습에 대한 개념도 없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해가 안 되는 학습지 영업을 하고 다녔다. 형이 사용하고 물려주면 동생이, 또 그 아래로 물려받고 물려주는 표○전과, 동○전과도 귀한 시절에 학습지를 보게 한다는 것은 스마트 워치를 구십 살 할머니에게 파는 것보다 현실성 없는 일이었다.
논마다 써레질이 한창이었다. 농로에서, 골목에서 마주치는 마을 사람들은 기수네를 어린아이로 취급했지 무언가를 팔고 사는 상대로 보지 않았다. 하릴없이 마을을 서성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 셋은, 특히 춘호는 사장에게 내팽개쳐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사장에게 버려졌다.’
말을 해서 안 것이 아니다. 춘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투자한 것 없는 사장은 그들이 지방에서 학습지를 개척해 오면 고마운 일이고 그러지 못해도 손해 보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굳이 지방까지 보내야 했을까? 이 의문은 두고두고 들었다. 필요 없다면 서울에서 그만 나오라고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사장은 그들을 지방, 그것도 고창으로 가라고 했을까? 귀찮아서? 그들을 보내고 싹 사라지기 위한 무언가 있어서? 학습지 사업을 지방까지 확대하고 싶은 원대한 사업 구상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명쾌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춘호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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