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기수
며칠 만에 학습지 개척도, 그렇다고 노는 것도 아닌 상황이 돼버렸다. 그들이 머무는 여인숙(주막이라고 해야 어울릴 것 같다)에는 3대가 살았다. 육십 중반으로 보이는 노부부, 키가 작고 통통한 서른 갓 넘은 아들과 어려 보이는 부인, 걸음마를 막 뗀 손자가 살았다. 아들은 백수였다. 종일 강둑에 앉아 낚시만 했다. 아침 먹고 낚싯대와 어항을 챙기면 부인이 고추장, 된장을 담은 그릇과 작은 냄비, 막걸리 한 주전자를 공손히 넘겨 주었다. 기수네가 학습지 영업을 하러 나갈 때 주막집 아들은 낚싯대를 매고 나섰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학습지 가방은 기수 혼자 차지가 되었다. 춘호와 대근이는 주막집 아들과 같은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지방 학습지 개척이 기수 혼자 일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방 학습지 영업은 실패했다. 춘호의 능력으로 몇 건의 배달 카드를 작성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서울로 부치지는 않은 것 같다. 기수와 대근이는 한 건의 카드로 만들지 못했다. 기수가 하루 종일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다 오면 두 친구는 막걸리 주전자를 가운데 두고 평상에 앉아 있었다. 기수에게 미안한 감정을 보였냐고? 전혀 그러지 않았다. 기수도 굳이 그런 것을 바라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현실이 불만을 앞섰고 불만이라는 감정도 몰랐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기수도 더 이상 학습지 가방을 메지 않았다. 강둑으로 갔다.
시간이 지난 후 돌이켜 보면 즐겁게 놀았던 기억 중의 한 부분이 그 강둑이다. 된장을 듬뿍 넣은 어항을 물이 천천히 흐르는 모래 속에 묻어 두고 하류에서 물장구로 시간을 보냈다. 햇볕에 등이 따갑도록 놀고 나서 어항을 들어 올리면 은빛 비늘을 파닥거리는 물고기가 가득했다. 그렇게 맛있는 매운탕을 먹어 본 적이 없다. 입에 착 붙는 매운탕에 막걸리를 마셨다. 열여덟 살이 얼마나 마실 수 있을까. 기수와 대근이는 강둑에 뻗어 오후 시간을 다 보냈다. 기수의 초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삶의 여정에 기수의 그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고창에 내려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열병처럼 마시던 막걸리도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그 자리는 기수의 자리가 아니었다. 학습지 영업도, 강둑과도 떨어졌다. 낯선 고장을 홀로 걸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학교로 향했다. 주막에서 조금 걸어 나가면 고창읍성이 나왔다. 성에서 나온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갔다. 교복 입은 모습이 부러웠다. 황금색 교표가 번쩍거리는 모자, 잘 다려진 파란 반소매 셔츠, 가슴에 붙은 이름표도 부러웠다. 불룩한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여학생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자전거를 탄 남학생들이 신나게 지나쳐갔다.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타는 아이, 두 손을 놓고 잘 타고 가는 아이. 넋을 놓고 바라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돌아섰다. 고등학교 교복, 얼마나 부러운 모습인가. 간절한 마음으로 훔쳐봐도 그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너희들처럼 교복을 입지 않았어도, 머리가 길어도 나도 학생이야. 너희보다 훨씬 공부 잘한 학생이야.’
라고 외치고 싶었다. 외침이 눈물이 되어 나왔다. 울적한 마음으로 들어오니 춘호와 대근이 험악한 표정으로 맞는다. 밖에서 보자고 한다. 주막 뒤 언덕으로 올라갔다. 이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불량 학생들이 친구를 팰 때 하는 전형적인 행동이다.
춘호는 두어 걸음 비켜서 돌부리를 차고 있고, 대근이 나선다. 비스듬히 서서 물어보는 자세가 여차하면 발길질할 태세다.
‘너 돈 있으면서 왜 안 내놨어?’
순식간에 상황이 이해되었다. 기수가 체육복 바지 재봉선에 숨겨 놓은 500원 지폐를 흔든다.
‘이건 내 돈이야.’
그 돈을 뺏길 수 없다. 야간열차를 타려고 집을 나서는 기수 손에 쥐여준, 얼굴을 보면 눈물이 나올까 봐 외면하면서 받은 어머니가 준 돈이다.
‘너희들은 사무실에서 돈 받았잖아.’
‘나는 전혀 받지 않았어.’
‘그리고 그건 내 돈이야.’
화날 때 또박또박 조용히 말하는 사람은 무섭다. 기수가 그랬다. 순식간에 주도권이 바뀌었음을 셋 모두 깨달았다. 춘호가 대근이를 어깨로 건들며 내려가자는 눈짓을 했다. 기수는 돈을 뺏기지 않았다. 춘호와 대근이 심성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다. 셋 모두 본능이 앞서는 시기를 걸어가고 있었다.
기수와 친구들은 더 이상 고창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돈이 떨어졌다. 학습지 영업을 계속할 수도, 그렇다고 서울로 올라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더 보내고 주막을 나섰다. 걱정거리 없는 주막집 아들은 함께 놀아줄 친구가 없어진 것에 대한 서운함뿐인 얼굴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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