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없는 집

28. 기수

by 재학

새가 양 날개로 날 듯 자식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른 정을 받으며 성장한다. 어느 정이 크고 적다고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부재중 어느 쪽이 더 안 좋은지도 따질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자애로움과 근엄함 중 어느 것이 더 필요한가 정도?


춘호네 가족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춘호가 이성을 잃고 아무렇게나 뱉어도 자연스러운 욕을 해 대며 형수에게 덤벼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차게 생긴 형수가 이 집의 실권자임을 모두에게 알리는 저녁이었고, 마루에 앉은 가족 누구와도 눈을 맞추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었다는 기억이 있다. 사실 눈을 맞췄더라면 어떤 표정이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끊어지는 기억으로 외양간에 붙어 있는 몇 장인가 멍석이 윗목에 말려진 방에서 작고 깡마른 춘호 아버지와 함께 네 명이 다닥다닥 붙어 잔 것밖에 없다. 방문 바로 앞에서 소가 되새김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파리를 쫓는지 가끔 머리를 흔들면 목에 달린 풍경이 울렸다. 그런 소리를 얼마나 들었을까? 아마 잠깐 들었을 것이다. 극심한 변화를 겪은 몸과 마음이 눕자마자 수면의 세계로 데려갔다. 아침이 되어 춘호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대근이는 잔뜩 구부린 자세로 자고 있었다. 춘호는 자는 건지 자는 것처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되었다. 밝아오는 봉창을 보며 그대로 누워 있었다.

마루는 어젯밤보다 작았다. 저렇게 조그만 곳에 어떻게 그 많은 식구가 앉아 밥을 먹었을까? 아침 상이 차려져 있고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일하러 나갔나 보다. 까만 보리밥, 거무스름한 된장 한 종지, 감잣국과 호박잎 데쳐 놓은 바구니도 있다. 아침을 먹고 춘호가 가족들 일하는 밭에 간다고 나가는 뒤를 대근이 따라갔다. 기수는 딱히 가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가족들과 대면하면 어색할 것 같았다. 집에는 기수와 어린 조카 둘만 남았다. 가방에서 학습지를 꺼내 주었다. 신기해했다. 첩첩산중에서 컬러 인쇄된 학습지를 처음 보았을 것이다. 조곤조곤 가르치는 데 집중을 잘한다. 그렇게 학습지 한 장을 풀었을 때 춘호와 대근이 들어서며 가자고 한다.


옆구리에 파고 들것처럼 붙어 앉아 학습지를 풀던 아이 얼굴이 순식간에 슬픔으로 덮였다. 순박한 산골 아이다. 그새 정이 들었나 보다. 기수도 마음이 아팠다. 춘호는 조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립문을 나갔다. 기수도 학습지 몇 장을 더 꺼내 쥐여 주고 쫓아갔다. 그렇게 이상한 가족과 만남은 끝났다.


춘호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어머니의 부재는 무능한 아버지의 무관심과 함께 춘호를 이 골짜기 말썽꾸러기로 만들었다. 산길을 걸어 다니는 학교 통학로가 춘호 놀이터가 되었다. 재 너머에서 오는 아이들, 계곡을 건너오는 아이들 모두 춘호에게 통행세를 바쳐야 했다. 책 보따리와 주머니 속 물건이 춘호 손으로 넘어가는 횟수가 늘면서 춘호가 학교에 결석하는 날도 늘어 갔다. 아침에 집을 나가면 학교가 아니라 산으로 갔다. 산을 휘젓고 다니다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에 맞춰 내려왔다. 밭 가장자리 묘지 옆에 누워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기다렸다. 결석 횟수가 늘고 춘호 주머니가 아이들에게 뺏은 물건으로 채워질수록 담임 선생님의 보호자 호출이 빈번해졌다. 춘호에게 시달림을 받은 아이들의 부모가 춘호 가족에게도 항의했다. 얼마 후 춘호는 자발적인 퇴학을 했고 무작정 서울행을 했단다.

‘나 중학교 졸업도 아냐.’

‘우리 아버지는 오히려 좋아했을 거야.’

‘형? 그 새끼는 신경도 안 써.’

언덕에 앉아 마른풀을 뜯으며 듬성듬성 들려준 춘호의 과거였다.


그렇게 떠난 집을 춘호는 다시 돌아와서 한 번 더 어머니의 부재를 확인했다.

‘엄니 없는 집은 오는 게 아니었어.’

산모퉁이를 돌면서 춘호가 내뱉은 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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