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기수
열아홉 살 때 지호네 작은방에서 담배를 배웠다. 상고를 나와 바로 회사원이 댄 지호가 자기 회사에서는 모두 핀다고 고급 담배라면서 주었다. 함께 피우다 지호가 잠깐 나간 사이에 지호 아버지가 들어 왔다. 아무 소리 않고 문을 닫으셨지만…, 그 뒤로 지호네 집엘 가지 않았다.
헤비 스모커는 아니었다. 한 갑 사면 사흘, 어떤 때는 1주일도 갔다. 물론 하루 한 갑씩 피우면서 버텨낸(?) 시기도 있다. (사십 대, 한수 이북 근무할 때) 그렇게 오십 초반까지 피우다 지금은 안 핀다. 10여 년 되었다. 수많은 종류 중 딱 한 가지만 피웠다. ESSE
춘호네 고향은 기수가 자란 고장과 달랐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산이 이어졌다. 나무껍질을 이어 붙인, 지붕이 낮은 집이 산비탈 밭 옆에 두세 채씩 있는 것이 꼭 꼬막껍데기 엎어 놓은 것 같았다. 다른 풍경을 기대하며 부지런히 산모퉁이를 돌아도 같은 모습이다. 어느 산자락이나 비슷했다. 기수네 마을에서 열 마지기 농사는 먹고 살 만 하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몇 마을 논을 다 모아도 열 마지기가 안 될 것 같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담뱃잎이 무성한 밭이 인상적이었다. 수확 철인가 보다. 넓고 긴 담뱃잎 사이로 사람들이 사라졌다 보였다 한다.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바쁜 때에 기수와 친구들은 한가롭게 마을을 돌아다녔다. 담배 일에 바쁜 사람들에게 학습지가 어떻고 하는 말이 먹힐 리 없다. 아이 키만큼 기다란 담뱃잎을 진 지게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잎만 출렁이며 지나갔다. 잎자루에서 하얀 진이 뚝뚝 떨어졌다. 진이 벤 삼베옷이 옻칠한 것처럼 윤이 났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걸음 옮기기를 반복했다. 터벅터벅 산길을 걷다 길가 따라 흐르는 개울가 산딸기도 따 먹으며 그렇게 돌아다녔다.
산자락을 돌아가는데 뒤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에 듣는 엔진음이라 반가웠다. 뒤돌아보니 순경아저씨가 다가오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엔진을 켜둔 채 손짓으로 불렀다. 춘호가 다가갔다. 역시 대장이다. 동네 이름도 들리고, 춘호 형인듯 싶은 이름도 들린다. 순경이 기수와 대근을 훑어 보고 오토바이를 돌려 내려갔다. 춘호가 그런다. 낯선 아이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는 신고가 들어 왔단다. 소리 없이 웃는 춘호 얼굴에 공허가 가득하다. 괜히 돌부리를 차며 또 하나의 산모퉁이를 돌았다. 해가 기울어 가는 시간에 마을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본 마을 중에 가장 컸다. 집이 열 채 정도 되었다.
어쩌면 저리도 다닥다닥 붙어 있을까? 옆집 소리가 다 들릴 만큼 지붕이 맞대어 있다. 그중 한 집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마당에는 산더미만큼 많은 담뱃잎이 쌓여 있었다. 그걸 짚으로 엮느라 밖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셋은 그날 밤부터 담배 일을 시작했다. 잠자리와 먹여주는 조건이 전부였다.
춘호와 대근인 밭에서 담뱃잎을 져 나르고 기수는 엮는 것을 도왔다. 짚에 물을 뿌려 가져다주고, 엮기 편하게 아주머니들 옆으로 담뱃잎을 쌓아 주고, 엮은 잎을 창고로 나르는 일이다. 알맞은 역할이었다. 몇 번의 심부름 후 멍석 끝에 앉아 쉬고 있으면 비척거리는 지게가 보이고 춘호와 대근이 다른 사람의 절반도 안 되는 짐을 지고 나타났다. 멋쩍게 웃고 있는 기수에게 눈을 흘기며 잎을 부려 놓고 내려갔다. 춘호도 대근이도 지게를 져 본 경험이 얼마나 될까? 특히 대근이 안쓰러웠다.
어둠이 몰려와 마당에 꼬마전구를 켤 시간이면 주인아주머니는 마루에 세 사람 분의 저녁상을 차려 놓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셋은 궁둥이만 붙이면 더 이상 공간이 없는 마루에 앉아 각자 몫의 양푼에 고개를 박았다.
수제비 한 그릇, 옥수수 한 자루와 찐 감자 몇 개가 전부였다. 겨우 어둠을 밀어내는 꼬마전구 아래 정신없이 먹었다. 그릇째 들이붓던 춘호가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어? 수제비에 멸치도 들어 있네?’
양푼 바닥에 남은 까만 덩어리가 멸치 똥인 줄 알았다. 한동안….
마루 위에 두 가닥의 전깃줄이 있고, 전깃줄에 앉은 새끼 제비는 시원한 배설과 휴식을 취하고서 처마 아래 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비가 남긴 흔적이 수제비 양푼 속으로 숨어들고, 셋은 깜깜한 꼬마전구 덕분에 멸치로 속아 주었다. 때로 앎은 고민과 고통을 준다.
아마 일주일 정도 담배 일을 한 것 같다. 학습지 생각이 났냐고? 문득문득 떠오르기는 했다. 학습지 개척이 아니라 가방 속에 학습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담배 수확도 마무리되고 더 이상 일꾼이 필요 없게 되었다. 주인 내외는 한푼의 삯도 주지 않고 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도 참 인정 없는 사람들이다. 특히 몸빼 바지를 야무지게 묶고 다니던 아주머니는 수제비값을 톡톡히 받아 내겠다는 의지가 역력하게 일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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