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사춘기는 어떻게 올까?
한 번도 생각을 못했다. 어느 데서 으레 어느 때 쯤이면 어떻게 행동을 한다더라 이야기를 넘의 일처럼 무심히 들었을 뿐이었다. 나에게 닥쳐올 일이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나에게는 닥쳐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십년 전 내 엄마가, 나는 사춘기도 없이 지나갔다고 하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광고 멘트를 알면 같은 세대겠다. 어느 시절 내가 아이에게 자주 했던 말은 노상 '네가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였던가 보다. 왜 넘의 일처럼 말할까? 나는 몰랐기 때문이다. 아이가 말해줘서 알았다. 엄마는 왜 자꾸 옛날 이야기를 하느냐고.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않느냐고.
뭐 심각한 이야기 중이었느냐고?
그저 사진이었다. 사진 좀 찍자니까 싫단다. 그것도 너무 정색을 하며 싫다니까 내가 무안할 지경인 거다. 사실 처음도 아닌데. 그러는 때가 왔구나 나름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는데. 어느 날은 나도 막나가고 싶었는지 야 네가 예전에는 사진 찍자고 그러면 어떻게 했는지 보여줘? 라고 말하고 만 것이고
그건 그때잖아!
라는 말을 나는 듣고야 만 것이고...
아이의 사춘기는 어떻게 올까? 엄마가 내 맘을 어떻게 알아! 일까? 그냥 좀 내버려 둬! 일까? 아이가 백 명이면 양상도 백 가지일 것이다. 남자친구와의 연애가 마냥 살갑고 행복하기만 하다가 어느 날 연락이 없기에 물었더니 어 그냥 잤어. 라고 말하는 걸 듣는 기분일까? 어머 나 좀 봐. 자녀의 사춘기를 어디다 비교하는 거야.
아휴 그런데 남친과의 연애와 뭐가 다를까? 꽥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바람이야! 라고 변명하며 문을 쾅 닫지 않아도 한 번씩 머쓱해 지는 기분, 궁색해지는 대답, 문제가 있냐 물어도 없다고 하는 대답..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하루하루 그냥 버텼다. 그만하면 양반이다 라는 말과 그럴 때가 되었다는 말 속에서 나는 눈물도 지었다가 기어이 화도 내었다가 다소 귀를 막고 입을 막아가며 산 것 같다.
같은데
나는 딸아아이가 한 명 더 있어요! 연년생이에요!
세상이 좋아져서 인화된 사진이 겹겹이 쌓여 있는 앨범을 굳이굳이 꺼내지 않아도 잠들기 전에 핸드폰으로 교복 입은 내 아이 신생아 적부터 다 볼 수 있다. 내가 밤마다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영상을 절로 보게 되는 이유이다. 교복 입고 다니는 내 아이들, 기실 저는 삶에서 가장 의젓하고 자아가 뚜렷한 시기이겠으나 나는 아이들을 보면 갓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쉴 새도 없이 몰아쳐 겹치는 터라
그래, 그래서 그랬겠지. 그 차이였을 거다. 나는 너희의 지금을 넘치게 사랑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너희가 보기에 나는 마냥 어린 시절만 그리워하며 그때와 같지 않다고 비교하는 것처럼 보였겠구나.
그걸 좀 늦게 알았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듯 보였던 그때의 너희는 너희대로, 지금 너희는 너희대로. 그건 벌건 대낮에 그나마의 이성이 발동하는 때에 그리 여기겠다. 그러나 밤에는, 나 혼자인 시간에는 나는 너희의 사진을 보겠다. 모자로 가리고, 손으로 가리고, 등만 보인 모습이 아닌 온 몸으로 엄마만 사랑한다 드러내는 모습을. 갓 태어났을 때나 서너 살 때나 지금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더 할 나위 없이 사랑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