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이면 강산만 변하는 게 아니라

가전제품도 백세시대 안 되나요

by 구우

12년도 10년이고 9년 8년도 10년이다. 십 년이다. 그리 된다.



시작은 우리 집 밥통이었다.


언젠가부터 밥이 다 되고 나서 오른쪽으로 그 뭐냐 뚜껑에 달린 그거,


그거를 돌려도 뚜껑이 잘 안 열렸다.


여러 차례 돌리기를 한 후 열리고 그랬는데,


지난주 어느 날 안 열리는 거다.


억지로 힘으로 돌려 봤더니 뚜껑이 열린다기보다 들린다는 표현이 맞는데,


문제는 내솥이 같이 들리더라는 거.


뚜껑에 그것이 돌아가며 압을 빼 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어 문제가 생긴 것 같다


라고 뒤늦게서야 이야기하는 거고


그래 이 밥통 십 년이면 오래 썼다, 하고 나는 쉽게 포기하였다.


그러니까 지나고 나니 섣부른 포기였다는 거다.


이 녀석이 밥통이 아니라 세탁기나 냉장고였으면 나는 쉬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밥통이 그냥 그나마, 새로 살 만 하구나 그만하면 오래 썼구나 하고 우리끼리 벌써 선고를 내린 탓이었다.




큰 아이가 태어났을 때 샀으니 우리 집 에어컨은 햇수로는 뭐 십 년이 넘어섰다.


그리고 올해 딱 문제가 생겼다면 절대 그렇지는 않고 몇 년 전부터는 매 여름마다 서비스 기사님을 부르고 있다.


나는 내가 신청을 하고서도 일주일이나 더 있다가 방문이 가능하단 말에 심적 고통을 느꼈는데 그 정도면 빠른 편이라고..


밥통으로 짧고 굵은 성장통을 겪고 나니 나는 아주 힘이 센 선풍기 여유!! 하며 그저 바람만 힘차게 뿜고 있는 에어컨을 보는 내 기분이 매우 심란하였다.


문제는, 서비스 부르면 되지 하고 늘 여유를 담당하던 남편마저 매년 이게 뭐냐.. 내년에는 바꿔야 하나 하고 사뭇 진지해졌다는 것이다.


그게 뭐가 문제가 되냐면, 매사 과민한 내 과민이 과민이 아닌 거구나! 하고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에어컨만 뚫어져라, 뚫어져라 바라보면 갑자기 냉기가 나올 것 같아서 한참을 쳐다보던 내 시선이 부엌의 냉장고에, 뒷베란다의 세탁기에 차례로 닿았기에 하는 소리다.




저건 절대 고장 나면 안 돼... 차례대로도 안 돼.. 걍 하던 대로 해.. 냉장고 너는 여태껏 잘 버텨 주었으니 계속 버텨 주어야 해.. 세탁기 니는 니도 별 문제없었지만 니는 엘지잖아? 백색가전은 엘지라매? 고장 나기만 해 봐 확!!




땡볕보다 비 소식이 더 겁난다. 땡볕은, 그러니까 오늘은 이렇게 밤에는 솔솔 바람도 들어오고 밤벌레도 울어 어머 설마 가을이야? 하는 착각도 한 3초 불러일으키는데 우와 비 오고 습하면 우와.. 나는 진짜 우와... 내 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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