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우리 집 두 아이가 주산암산 대회를 치르는 날이었다. 나에게는 연년생 아이가 있는데 야속한 시험 시간표는 제일 첫 시간과 제일 마지막 시간에 우리 두 아이를 배정해 주어서 나는 오늘 대회장까지의 왕복 한 시간 여의 길을 두 번씩 운전했다.
3학년 내 첫째 아이가 제1부였다. 날도 춥고 일찍부터 움직이느라 둘 다 피곤했는데 대회장에 가니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이 확 들었다. 내 주변에서는 주산을 하는 아이가 없어 외로웠는데 여기 오니 다들 주산 가방 들고 있어서 어쩐지 소속감이 느껴졌다. 나는 주차장에서 대회장으로 가는 길에 아이 손을 잡고 노래를 했다. '3학년 1등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내 3학년 아이는 기분 좋게 웃으며 재밌어했는데 이 시간에 시험 치는 아이들이 다 3학년이라는 걸 알고 나선 조용히 불렀다.
시험장에 와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건 내가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 가장 크지만 여기까지 오려고 매일 준비한 시간이, 정확히는 준비시킨 시간에 스스로 떳떳했기 때문이었다. 떳떳하다는 표현은 좀 알맞지 않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좀 더 준비할 걸, 보다는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즐겨라!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입시도 아니고.. 라며 애써 시큰둥한 척 있으면 내 두근대는 심장이 진정될까 싶어서이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애써 노력한 게 있었을까? 없진 않았겠지만 근 한 달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아이들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심이었다. 물론 이 아이들을 매일 연습시킨 내 공이 제일 크지만 세상에 난 지 만 10년도 되지 않은 자그마한 아이 둘이 연습하자고 하니 하고 나름으로 작전을 짜고 점수에 일희일비하는 나날이 나에게는 노래 제목 그대로 감동이었다.
매일 하는 데 당연히 늘지. 하는 만큼 된다 라는 말로 가볍게 퉁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지켜보는 만큼 실제로 아이들은 고역스럽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시험을 치고 나오는 표정이 좋았고, 농담처럼 내년에 또 칠까? 하는 말에도 짐짓 싫은 체했지만 씩 웃었으니 말이다(5분, 5분, 2분이라는 짧은 시간도 한몫했다 보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사십 년 넘게 살며 크게 경험해 보지 않아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성취감이라든지 보람이라는 가슴이 간지럽고 울렁대는 감정을 아이들 덕분에 느껴보았다.
아이들도 시험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는지 종일 방방 웃었고 나도 무사히 대회를 치러 한결 마음이 놓였다. 게다가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도 좋아서 우리 집 사람들은 글자 그대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의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 말이 제일 중요한데 우리 집 2학년이 대회장으로 출격할 때도 내 아이 귀에 분명히 들리도록 노래를 불러주었다. '2학년 1등이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