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림질 뭐까지 다려봤니

옷 구김만 펴지는 게 아니라

by 구우

오늘, 아니 어제구나 비를 뿌렸다 말았다 구름이 걷혔다 몰렸다 하는 하늘을 열심히 살펴보다가 저녁, 아니 밤에 빨래바구니에 있는 옷가지들을 카트며 가방에 꾹꾹 눌러담아 빨래방에 다녀왔다. 지난 6월 장마철에 가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6월에 갔을 때는 건조까지 끝나 뜨끈뜨끈한 옷가지들을 빨래방에서 다 개켜서 가지고 왔는데 이번에는 밤이 깊기도 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우루루 담아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좀 불안불안 하더니만,




모이미(우리집 탁자)위에 담아 온 빨래를 탈탈 펼쳐 놓는데 아직 따뜻함이 남아 있었고 그 따뜻한 온기에 옷들이 야무지게 다 구겨져 있었다...




수건? 구겨져도 문제 없음. 속옷? 역시 상관 없음. 쿨링 소재 어쩌고 하는 남편의 옷들은 구겨지는 게 뭔지도 모름.




완전히 다 마르지 않은 것들을 추려내서 건조대에 걸고, 주름 여부와 상관 없는 것들은 다 정리해서 넣고 나니 순면 100프로를 자랑하는 내 옷과 내 옷과 아이들 옷과 아이들 옷만이 남아 있었다.




애들 옷이야 뭐.. 하고 모이미에 펼쳐 놓고 손바닥으로 쭉쭉 펴 봤는데 안 펴졌다. 구겨진 내 옷이 있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게 확실하다면 제일 좋은 건 이 옷들을 다시 세탁기에 넣어 빠는 것일 게다. 탈수 끝난 옷 탁탁 털어서 널면 빳빳하게 잘 마르니 말이다.




그런데 또 애써 빨래방까지 가서 빨아온 걸 그러자니 헛고생을 한 것 같고 옷이 한 두 벌도 아니고.. 해서 나는 밤 12시가 넘어서 다리미를 꺼내 다렸다. 내 옷도 아이들 옷도 다렸다. 블라우스나 셔츠도 아닌 그냥 면 티셔츠를 말이다.




처음은 아니었다. 다림질은 질색이라 평소 최대한 주름이 잘 가지 않는 옷을 입으며 요리조리 다림질 할 일을 피해가며 살다가 얼마 전부터 다림질 해야 할 옷들을 잔뜩 모아서 날 잡아 다려놓고는 했다. 기왕 다리미 열 올랐는데.. 하며 티셔츠도 한 번 다려봤는데 어머나 탈탈 털어 말려 입는 것 과는 차원이 다르잖아!




하여 사실은 면티셔츠도 다려 입고 다녔던 나란 사람.. 아이들 옷도 못 다려줄 이유가 없다. 내 옷에 주름 하나 없으면 그저 깔끔해진 기분이었는데 아이들 옷을 다리고 있으니 내 아이를 더 사랑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가 때 얼굴에 로션을 부드럽게 발라주었던 때 처럼 말이다. 머리카락 빗어줄 때 어디 튀어나온 부분은 없나 몇 번이나 손으로 머리를 매만져 주는 것 처럼 말이다.




내가 이젠 하다하다 티 쪼가리도 다림질을 해야 해.. 로 시작해서 내가 점점 할 수 있는 집안일이 많아지는 구나 레벨 업이 된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데 말끔해진 아이들 옷을 차곡차곡 접어 서랍에 정리하고 하니 개운한 기분까지 들어 마무리가 아주 좋았다.




그래도 더 좋은 건 날이 맑아서 집에서 내 세탁기로 빨래 하는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 술은 새 부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