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머리는 도전과 포기의 영역
타고났음 오죽 좋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두발 제한 때문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나? 초등학교 졸업 사진에 커트 머리인 거 보면 그 전에도 짧았나 보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단발머리를 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고개를 숙이면 머리카락이 차르르 내려오는 게 신기했다. 궁금했다. 나는 고개를 아무리 숙여도 머리카락이 내려오지 않았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나는 왜 머리카락이 안 내려와?
내 머리카락이 곱슬이라서 그렇다. 게다가 머리숱도 많다. 머리카락도 굵다. 나도 찰랑찰랑 거리는 생머리이고 싶어 라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내게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는 커트 머리 (그때는 상고머리라고 불렀다)를 하고 졸업하고 나서는 묶고 다녀야 할 거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즈음에 동네마다 천냥백화점이 많이 생겼는데 몇 천원짜리 스트레이트 크림을 사서 머리카락에 바르고 촘촘한 빗으로 열심히 빗어댔다. 그러면 며칠은 차르르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짧은 나름으로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돈이 생기자 미용실에 가서 스트레이트 펌을 했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는 머리카락이 길거나 짧거나였고 스트레이트 펌을 하거나 웨이브 펌을 해 왔다. 대부분이 그렇듯이.
작년 가을에 평생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 줄 알았던 커트 머리에 꽂혀 고민 끝에 잘랐고 그 후로 몇 번 다듬었다가 펌을 추가로 했다가 하며 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옆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길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반묶음까지는 안되고 짧은 단발 쯤 되나 보다. 사실 스트레이트 펌을 하면 더 길 것 같기도 하다. 이 곱슬머리는 보이는 것보다 실제 머리카락이 더 깁니다... 요즘같이 습한 날 거울을 보면 찰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고데기를 해도 도저히 먹히지를 않아 머리카락이 아주 살아 숨을 쉰다.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이다. 어렸을 때 처럼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지금도 막 갖고 싶은 건 아니다. 비싼 돈과 긴 시간을 들여 해도 결국 새로 자라는 머리카락은 또 자유로울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여 당분간은 이렇게 지낼 것 같다. 꼭.. 조만간 미용실 가야 할 것 같은 머리 모양으로 말이다. 조금 더 버티다가 반묶음 하면 또 얼마간 버틸 수 있을 것 같고..
생머리를 포기했냐면 또 그렇지는 않다. 어느 날 문득 커트 머리에 바람이 들어 결국 자르고 만 것처럼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를 할 때야! 하며 미용실을 달려갈지도 모를 일이다.